[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⑥ 평화누리길

행주산성과 호수공원 잇는 평탄한 길 11㎞ 
수많은 이야기 품고 있는 행주산성역사공원 
넓은 채소밭 자리엔 한강평화공원 공사 한창 

자유로 철책 따라 한강 바라보며 ‘무념무상’
철조망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들의 생명력
나무그늘 시원한 호젓한 쉼터 청평지 공원

[고양신문] 명절 연휴 중 반나절의 여유가 생겨 고양누리길을 찾았다. 홀로 또는 누군가와, 각자의 방향과 속도로 걷고 있는 이들과 마주친다. 때론 스쳐가는 이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여백 같은 시간을 알차게 즐기기엔 역시 고양누리길 나들이가 제격이다.   

고양누리길 6코스 '평화누리길'은 행주산성역사공원에서 출발해 ▶행주대교 하단 ▶자유로를 따라 이어진 한강 철책길 ▶호수로 녹지공원(또는 이가순 수로 압도길) ▶청평지 공원을 차례로 거쳐 일산호수공원까지 걷는 코스다. 길이는 11㎞, 오르막 내리막이 거의 없이 평탄하다. 

평화누리길의 출발점인 행주산성이 고양의 자랑스러운 과거를 대표하는 상징공간이라면, 종착점인 일산호수공원은 메가시티로 성장한 고양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공간이다. 그리고 이 두 공간을 이어주는 누리길의 테마는 고양의 미래에 대한 꿈을 담은 단어인 ‘평화’다.  

구간마다 다른 느낌, 다른 매력

지도를 보며 코스를 개괄해보자. 이번에도 기자가 임의로 구간을 구분해보았다. 행주산성역사공원~행주대교로 이어지는 ①번 구간에선 한강의 수변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자유로 철책길을 걷는 ②번 구간은 철조망 너머 장항습지의 풍요로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호수로를 거쳐 일산호수공원에 도착하는 ③번 구간은 녹지공원을 따라 느긋하게 나들이를 마무리하는 길이다. 

하나 더 있다. 신평동과 백석동의 농경지·소하천들을 차례로 지나는 ④번 길은 ②구간의 출입이 허용되기 전까지 평화누리길 코스로 이용됐던 옛길로서, 잊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추가로 소개하려 한다.  

[고양누리길 홈페이지 지도 + 고양신문 수정] 
[고양누리길 홈페이지 지도 + 고양신문 수정] 

공원 곳곳에 숨은 역사의 흔적 

행주산성역사공원은 이름에 걸맞게 겹겹의 역사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공원 한 곳에는 행주어부들이 탔던 어선 조형물이 있다. 행주나루는 조선시대 서해바다로 올라온 조운선과 황포돛배들로 북적이던 커다란 포구였단다. 또한 봄바람 불 때 행주강에서 잡히는 웅어는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다고 한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행주마을의 풍광과 웅어를 잡는 행주어부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행호관어도(杏湖觀漁圖)’를 남기기도 했다. 

행주산성역사공원의 웅어잡이 어선 조형물.
행주산성역사공원의 웅어잡이 어선 조형물.

개화기에는 행주나루가 외국의 신문물이 조선 땅으로 흘러들어오는 관문이었다. 행주나루터를 내려다보는 행주외동 마을에는 행주서원과 함께 고양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과 교회가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독립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던 1919년, 행주나루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한 선상만세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조선 땅을 떠나간 곳이 행주나루이기도 하다. 

공원의 맨 위쪽에 자리한 한국농어촌공사 행주양수장 입구에는 작은 돌비석 하나가 서 있는데, 독립운동가이자 농촌계몽가였던 양곡(陽谷) 이가순(李可順, 1867~1943) 선생을 기리는 관개송덕비(灌漑頌德碑)다.

공원 끄트머리에는 장항버들장어전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강하구의 다양한 어종과 풍요로운 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행주산성역사공원 아래쪽에 자리한 장항버들장어전시장.
행주산성역사공원 아래쪽에 자리한 장항버들장어전시장.

한강에 그물 던지는 행주어부들 

행주산성역사공원 나들이를 마치고 행주대교로 향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구간은 통행이 불편한 비포장도로였는데, 지금은 넓은 도보로가 잘 정비됐다. 길 오른쪽으로는 근사한 카페와 식당들이, 왼쪽으로는 강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가지 사이로 시원한 한강 풍광이 펼쳐진다. 

길 중간에 행호정(杏湖亭)이라는 멋진 정자가 새로 세워졌는데, 정자 근처가 바로 과거 행주나루터가 있던 자리다. 행주나루 아래쪽에는 돌빵구지라는 커다란 바위가 돌출해 있어서 자연 방파제 역할을 했었다는데,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한강과 행주대교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행호정. 
한강과 행주대교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행호정. 

행주대교 하단이 가까워지면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행주어촌계 어부들의 선착장이자 작업장이 다리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수북이 쌓여있는 어구 사이로 그물을 깁고 있는 어부들의 모습도 보인다. 바닷가에서나 만날 것 같은 어부들이 고양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행주대교 하단 선착장에서 배를 띄우는 행주어부들.
행주대교 하단 선착장에서 배를 띄우는 행주어부들.

50년 만에 개방된 한강변 철책길 

발걸음은 자유로변 철책길(지도 ②번길)로 향한다. 철책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부대 순찰로로 이용되던 길이었다. 1960~70년대 한강 하구에 무장공비가 출몰하며 김포와 파주, 고양의 한강변에 이중 삼중의 철조망이 둘러졌다. 하지만 50여년 만에 철책선 일부가 순차적으로 제거되고, 지금은 행주대교에서 김포대교를 지나 신평 소초(新平 小哨)까지의 구간이 일반인에게 개방돼 자전거길과 도보로로 이용되고 있다. 

두어 해 전까지도 드넓은 채소밭이 펼쳐졌던 철책길 초입에선 한강 둔치를 따라 고양평화공원 조성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환경이 가장 아름다운 한강공원을 만나게 될 것 같다. 

한강 철책길가에 핀 달맞이꽃.
한강 철책길가에 핀 달맞이꽃.

걷기여행 측면에서 보자면, 철책길은 사실 그다지 재미있는 길이 아닐수도 있다. 순찰로와 자유로 사이 2차 철책은 사라졌지만, 한강수변 진입을 차단하는 1차 철책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한쪽으로는 자유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소음이 끊이지 않고, 한쪽으로는 철책 담장이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나무그늘도, 쉬어갈 벤치도 없는 딱딱한 시멘트길을 4㎞ 남짓 직선으로 걸어야 하기 때문에 맑은 날 이 길을 걸으려면 햇빛을 가릴 모자를 꼭 챙겨야 한다. 

철책 너머 펼쳐진 장항습지 경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책길은 한번쯤 걸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길임에 분명하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한강 하구와 장항습지의 자연경관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며 무념무상(無念無想) 걷기 삼매경을 즐길 만하기 때문이다. 

한강하구는 우리나라에서 대하천 기수역(汽水域) 생태계가 원형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김포대교 하단에서 일산대교까지 이어지는 장항습지는 생태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지난 봄 국제적 습지보호협약기구인 람사르습지에 이름을 올렸다.  

철책 틈새로 조망되는 장항습지. 강 건너편 김포와 인천 계양산의 모습도 보인다.
철책 틈새로 조망되는 장항습지. 강 건너편 김포와 인천 계양산의 모습도 보인다.

초록의 습지 숲 너머 강물 위로 군데군데 솟은 하얀 모랫등에 갈매기와 가마우지들이 빼곡이 자리하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철책 사이를 다양한 종류의 덩굴식물들이 타고 오른다. 사람들이 금 그어놓은 단절의 벽이 부드럽고 연약한 식물들에게 서서히 점령당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시선을 멀리 향하면 강 건너 김포의 아파트단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 우뚝 솟아있는 인천 계양산의 모습도 시야에 들어온다. 

철조망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
철조망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

하나의 길, 세 개의 이름  

길을 걷다 보면 서로 다른 디자인의 이정표들이 등장해 나들이꾼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잠깐 길 이름들을 짚어보자. 이 길을 고양시는 고양누리길 6코스 ‘평화누리길’로, 경기도는 평화누리길 4코스 ‘행주나루길’로 각각 명명했다. 여기에 최근 못 보던 이정표 하나가 더 보태졌는데, 바로 행정안전부가 코스를 정비하는 ‘DMZ평화의길’이다. 정리하자면, 하나의 길을 대한민국 정부와 경기도, 그리고 고양시가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따로 또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길들을 한꺼번에 비교해볼 수 있는 통합안내판이 하나쯤 설치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철책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 과거 군 경계초소로 사용됐던 시설물이 나타나는데, 현재 전망데크로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정비작업이 진행중인 'DMZ평화의길' 이정표.
정비작업이 진행중인 'DMZ평화의길' 이정표.

보전과 이용의 현명한 균형점은?

한편으로 평화누리길은 고양시가 보유한 가장 중요한 잠재적 자산인 ‘한강 하구’ 두고 서로 다른 입장과 요구가 충돌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관광 활성화 측면에서는 평화누리길 전체 구간의 접근성과 이용 편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설과 활용 아이디어를 도입하자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분단이라는 비극적 역사로 인해 뜻밖에도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던 한강 하구의 소중한 생태계를 섣부른 조바심으로 함부로 손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민들 역시 누군가는 차량 접근성을, 누군가는 자전거 이용의 편의를, 누군가는 보행자 중심의 시설 조성을 제각각 요청하고 있다. 보전과 이용 사이에서 현명한 균형점을 찾는 일은 늘 쉽지 않은 일이다. 이왕이면 이 길을 두 발로 걸어보며 고민에 동참해보면 어떨까. 

군데군데 나타나는 군 초소.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군데군데 나타나는 군 초소.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호젓한 쉼터 청평지와 샘터광장

철책길 개방구간이 끝나는 신평 소초(新平 小哨)에서 자유로 하부통로를 지나 안쪽으로 넘어온다. 제2자유로 신평IC를 지나다보니 멀리 화정 아파트단지 너머로 북한산이 어김없이 반가운 모습을 드러낸다. 

호수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선택지가 둘이다. 하나는 호수로 녹지공원을 따라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호수로 하단 농수로(일명 이가순 수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농수로길은 신평동 일대의 옛 지명을 따서 압도(鴨島, 오리들이 날아들던 섬)길이라 부르는데, 벚나무가 줄지어 있어 봄이면 장관을 이룬다. 

높다란 양버즘나무와 상수리나무, 잣나무가 우거진 녹지공원길을 조금 걸어가면 서울 자양동양수장에서 끌어온 물을 정화해 호수공원으로 공급하는 청평지가 나타난다. 나무그늘이 울창한 청평지와 샘터광장공원은 호수공원의 일부이면서도, 법원공무원교육원 이면도로 바깥쪽에 자리한 까닭에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많지 않아 호젓한 산책과 휴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샘터광장공원의 느티나무그늘.
샘터광장공원의 느티나무그늘.

소하천 여럿 만나는 신평동 옛길 

고양누리길 6코스의 종착점에 도착했지만 아쉬움이 남아 지도에 ④번으로 표기한 옛길을 따라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이 코스는 섬말다리에서 도촌천을 만나고, 도촌천 둑방길을 따라 내려가면 신평배수펌프장이 나온다. 

길은 원능수질복원센터 앞에서 농로를 따라가다 대장천, 행신천 다리를 차례로 건너고, 자유로와 제2자유로 하부통로를 차례로 지난다. 해마다 ‘고양 바람누리길 걷기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수백여 명의 참가자들이 이 길을 따라 행주산성을 향해 걷기도 했었다. 이제는 고양누리길로서의 역할을 다한 길이지만, 신평동과 능곡벌판의 소하천 물길과 농경지의 맨얼굴을 만나볼 수 있는 길이라 나름 흥미로운 길이 아닐 수 없다. 

차를 세워둔 행주산성역사공원으로 다시 돌아오니 어느새 석양빛이 행주대교 너머로 모습을 감춘다. 모든 것들이 평화롭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섬말다리 인근에서 바라본 도촌천 모습. 
섬말다리 인근에서 바라본 도촌천 모습. 

❚평화누리길 걷기 정보 
- 코스 길이 : 11㎞
- 소요 시간 : 2시간 40분~3시간 
- 출발점 : 행주산성역사공원 
- 도착점 : 일산호수공원 
- 경관포인트 : 행주산성역사공원 전망대, 행호정 한강수변, 철책길에서 바라본 장항습지, 샘터광장공원 나무그늘
- 화장실 : 2곳(행주산성역사공원, 샘터광장공원) 
- 뒤풀이 맛집 : 백석2동 13블록 먹자골목 

옛 행주나루터 부근에서 바라본 행주대교의 모습.
옛 행주나루터 부근에서 바라본 행주대교의 모습.
철책에 걸려 있는 평화 염원 메시지.
철책에 걸려 있는 평화 염원 메시지.
자유로 하부통로를 통과하면 나타나는 이면도로.
자유로 하부통로를 통과하면 나타나는 이면도로.
제2자유로 신평IC에서 바라본 북한산 전경.
제2자유로 신평IC에서 바라본 북한산 전경.
나무그늘이 울창한 호수로 녹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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