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⑩ 견달산누리길

견달산 주변 성석동·문봉동 지나는 10.2km  
이정표·리본 잘 따라가야 하는 복잡한 코스 
서너번씩 등장하는 서문고속도로·북한산 풍경 

소소한 역사 이야기, 사람 사는 풍경 간직한
산길 들길 마을길 물길 골고루 만나는 재미 

견달산누리길의 출발점인 진밭마을의 들녘.
견달산누리길의 출발점인 진밭마을의 들녘.

[고양신문] 어느새 고양누리길 14개 코스 중 9개를 지나왔다. 고양시 지도를 놓고 그동안의 여정을 짚어보면, 동쪽 북한산을 출발해 중심부 별아산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 행주산성이 자리한 덕양산을 찍고, 한강을 따라 서쪽으로 올라오며 호수공원과 정발산을 지난 후 서북쪽 탄현·중산의 황룡산과 고봉산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남아있는 10코스 견달산누리길부터 송강누리길(11코스), 고양동누리길(12코스), 오선누리길(13코스)까지는 고봉동·관산동·고양동·오금동 등 고양시 북쪽 공릉천 주변의 마을들을 차례차례 둘러보는 일정이다. 여기까지는 동선이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마지막 바람누리길(14코스)은 창릉천을 따라 고양의 대표적인 상징공간인 한강과 북한산을 잇는 특별 보너스 코스다.    

진밭마을 농경지 사이로 흐르는 성석천. 
진밭마을 농경지 사이로 흐르는 성석천. 

복잡한 길 찾아주는 이정표·안내리본

오늘 함께 걸어볼 견달산누리길은 성석동·문봉동·사리현동 등 고봉산과 견달산 기슭의 자연마을을 지난다. 이 마을들은 고양시에서 가장 개발의 바람을 덜 탄 동네들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옛 자연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빌라와 창고 등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고, 신설되는 도로들이 마을을 가르며 놓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견달산누리길만 하더라도 도로폭이 40m에 이르는 서울문산고속도로를 육교와 하부통로를 이용해 세 번이나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진밭, 안골, 빙석촌, 은행안골, 청대골 등의 자연마을과 산자락을 차례차례 지나고, 마지막에는 원당천도 만나기 때문에 마을길, 들길, 산길, 논둑길, 도로, 그리고 물길까지 골고루 만나는 재미가 있다. 다만 그만큼 코스가 복잡하기 때문에 고양시 녹지과에서 부착해 놓은 고양누리길 이정표와 안내 리본을 놓치지 않도록 집중력을 유지하며 걸어야 한다. 코스의 길이는 10.2km다. 

견달산누리길은 코스가 조금 복잡한 구간이 있어 이정표를 잘 숙지하며 따라가야 한다. 
견달산누리길은 코스가 조금 복잡한 구간이 있어 이정표를 잘 숙지하며 따라가야 한다. 

왕후·판서 배출한 명문가의 선영 

견달산누리길의 출발점은 고봉누리길을 지나며 통과했던, 진밭마을 함종 어씨(咸從魚氏) 문중묘다. 고봉산 아랫자락 언덕에 여러 개의 묘역이 넓은 간격을 두고 이어진 풍광이 인상적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조선 20대 임금 경종의 왕비 선의왕후가 바로 함종 어씨였고, 성종 때는 병조판서를 배출하기도 한 명문가문이라고 한다. 고양에 뿌리를 두었던 옛사람들의 자취를 만나며 소소한 역사 공부를 하는 것도 고양누리길 나들이의 또 다른 재미다. 

함종어씨 문중묘.
함종어씨 문중묘.

소하천이 흐르는 진밭마을 들녘

진밭마을 들녘에는 추수를 마친 논과 추수를 기다리는 논이 반반이다. 진밭마을을 흐르는 장진소천과 성석천은 들녘의 풍요를 가져다준, 작지만 고마운 물줄기들이다. 농촌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논을 보면 괜히 마음이 푸근해진다. 우리네 유전자 속에 수천 년 이어온 농경민족의 디엔에이가 녹아있는 모양이다.

진밭마을 들길을 가로지르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고봉산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매번 산 남서쪽 자락에서만 바라보던 고봉산을 북서쪽 자락에서 올려다보니, 주변의 높은 빌딩이 없어서인지 그 산세가 더욱 우뚝하다.

성석천을 건너 작은 숲길로 들어서는데, 백마부대 신병교육대의 수류탄 투척교장임을 알리는 경고문이 연이어 나타난다. 숲으로 둘러싸인 양지바른 작은 마을 안골을 지나면 이번엔 신교대 각개전투교장이다. 숲길을 행군해 이곳저곳 훈련교장으로 이동했던, 육군 훈련병 시절의 긴장됐던 느낌이 삼십여 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진밭마을 숲으로 들어서며 뒤돌아본 고봉산의 모습. 
진밭마을 숲으로 들어서며 뒤돌아본 고봉산의 모습. 

고속도로 만들며 훼손된 야산들

다시 숲길로 들어서서 햇살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평탄하고 고요한 소나무길을 걷는데, 갑자기 자동차 소리가 들려오고 시야가 환하게 트인다. 산자락을 관통한 서울문산고속도로다. 교통망의 확충은 어느 지역에서든 숙원사업이지만, 새로운 길을 낼 때마다 이름 없는 숲과 언덕들이 잘려나가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넓고 곧게 뻗은 길을 따라 상행·하행차선 모두 차들이 시원하게 속도를 내고 있고, 견달산 터널 어깨너머로는 북한산의 모습이 고개를 내밀었다. 

서울문산고속도로로 끊긴 숲길을 문봉육교가 이어준다. 육교를 건너는데, 고속도로변 경사면이 노랗고 화사하게 물들었다. 자세히 보니 소담스런 산국이다. 외래종이 아닌 우리 들꽃으로 경사면을 정리한 모습이 그나마 정겹다.

서울문산고속도로 뒤쪽으로 조망되는 북한산의 모습.
서울문산고속도로 뒤쪽으로 조망되는 북한산의 모습.

문봉서원 자리했던 견달산 아랫마을  

다시 숲길을 잠시 걸어가니 문봉낚시터가 나타난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에 차량이 가득하고, 각자의 세월을 낚고 있는 이들이 좌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마을길을 따라 내려가니 집들이 제법 많은 동네가 나타나는데, 고봉16통 빙석촌(氷石村) 마을이다. 마을회관 앞을 지나다보니 ‘고양시 에너지자립마을 1호’라는 안내간판이 붙어있다. 마을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집집마다 지붕에 태양광발전패널을 달았단다. 이름에 얼음 빙(氷)자가 들어가는 마을이 태양광 마을로 변신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문봉동 자연마을에는 자그마한 텃밭을 마당에 끼고 있는 집들이 많다. 개중에는 텃밭농사를 아주 잘 지은 집도 있고, 건성건성 잡풀이 무성한 텃밭도 있다. 그런가 하면 배추나 무 대신 화사한 꽃밭을 알뜰하게 가꾼 집도 있다. 제각각인 텃밭의 풍경은 서로 다른 집주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빙석촌 마을 주택 화단에 핀 가을꽃.
빙석촌 마을 주택 화단에 핀 가을꽃.

문봉동의 문봉(文峯)은 견달산을 일컫는다. 이 마을에서 견달산을 바라보면 좌우 대칭의 세모꼴인 문필봉(文筆峰)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문필봉 아랫마을은 뛰어난 학자가 배출되는 길지로 꼽혔다. 이러한 배경에서 과거 고양팔현(高陽八賢)을 모신 문봉서원(文峯書院)이 이 마을에 자리했었다. 

미로찾기처럼 복잡한 공사구간 

마을길은 성석동과 문봉동, 사리현동을 가로질러 통일로로 이어지는 큰길인 성현로와 만난다. 예전에는 길 안쪽 문봉천을 따라 견달산누리길이 이어졌는데, 최근 성현로 건너 문봉길을 따라 고봉동 행정복지센터 방향으로 걷다가 다시 견달산쪽으로 건너오는 것으로 코스가 변경됐다. 고봉동행정복지센터 뒤편으로 보이는 산은 독산(禿山, 대머리산)이라 불리는데, 과거 이 산의 정상부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한다. 

견달산로를 따라가는 길은 군부대 사격장을 지난다. 얼마 전까지 시설이 개방돼 누리길을 걷는 이들이 쉬어가기도 했었는데, 이번에 가 보니 펜스가 쳐졌고 어김없이 경고문구가 내걸렸다. 마을길을 따라가다 다시 만난 서울문산고속도로를 이번에는 하부 통로로 통과하면 거대한 물류창고 건물이 나타나고, 건물 앞에는 편의점과 식당도 자리하고 있다. 

식사동에서 사리현 사거리로 넘어가는 사리현로 확장공사 구간을 따라가다가 다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든다. 공사구간과 큰길이 반복되는 이 구간은 여차하면 길을 잃기 쉽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다시 서울문산고속도로 만나 경사면을 따라 걷게 되는데, 이번에도 북한산이 더욱 또렷이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미로찾기처럼 복잡한 길을 찾아오느라 살짝 스트레스를 받은 마음이 저절로 풀린다. 

성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독산.
성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독산.

아름다운 곡선 그리는 견달산 오솔길

이어 비닐하우스가 가득한 작은 마을이 나타나는데, 사리현동 은행안골마을이다. 마당이 넓은 집에서 나지막한 타작 소리가 규칙적인 템포로 들려온다. 담장 안을 건너다보니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커다란 도리깨로 꼬투리 가득 매달린 콩줄기를 리듬을 타듯 연신 후려치고 계신다. 

은행안골을 지나자 걷기 좋은 숲길이 이어진다. 곧게 뻗은 나무와 평탄한 높낮이, 적당한 곡선과 폭신한 바닥 등 매력적인 오솔길이 갖춰야 할 요소들을 빠짐없이 지니고 있어 견달산 한구석의 숨은 명소를 발견한 기분이다. 

숲길의 행복을 넉넉히 만끽하며 걷다 보니 삼거리 분기점이 나타난다. 직진하면 공양왕릉으로 이어지고, 왼쪽으로 꺾어지면 고양누리길 다음 코스인 송강누리길로 연결된다. 공양왕릉은 고양누리길 번외편인 ‘배다리누리길’을 소개할 때 들르기로 하고 왼쪽길로 방향을 잡는다.  

사리현동 숲길을 걷다가 만나는 삼거리 분기점. 
사리현동 숲길을 걷다가 만나는 삼거리 분기점. 

걸어야만 보이는 장소들의 친연성 

숲길에서 벗어나 원신동 청대골 마을로 나오니 전주이씨 광달재선영 무덤가의 산억새가 나들이꾼을 반긴다. 추수를 마친 논에는 트랙터가 만들어낸 기하학적 무늬가 선명하다. 서울문산고속도로의 높다란 교각 아래를 지나니, 주교동과 사리현동을 잇는 원당로다. 길을 건너 원당화훼단지 입구에서 원당천 산책로를 따라 쥬쥬 테마동물원에 도착해 견달산누리길 나들이를 마무리한다.   

사실 견달산누리길은 직접 걸어보기 전에는 머릿속에서 좀처럼 동선이 잘 그려지지 않았던, 조금은 낯선 길이었다. 하지만 구석구석 요령 있게 코스를 짠 덕분에 고봉산과 견달산, 원당천, 그리고 이어 걷게 될 공릉천이 비로소 하나의 코스로 연결됐다. 기억속에서 따로따로 존재하던 장소들의 친연(親緣) 관계를 찾아주는 마법, 걷기가 선사하는 쾌감의 하나다. 

아름답게 이어진 견달산 오솔길. 
아름답게 이어진 견달산 오솔길. 

❚견달산누리길 걷기 정보 
- 코스 길이 : 10.2㎞
- 소요 시간 : 3시간30분~4시간
- 출발점 : 고봉산 진밭마을 
- 도착점 : 테마동물원 쥬쥬  
- 경관·휴식 포인트 : 문봉육교 북한산 전망, 사리현동 숲길, 원당천 산책로
- 화장실 : 1곳(빙석촌 마을회관) 
- 뒤풀이 맛집 : 원당로 주변 음식점

 

문봉동을 가로질러 흐르는 문봉천.
문봉동을 가로질러 흐르는 문봉천.

 

문봉낚시터 이정표.
문봉낚시터 이정표.
추수를 마친 빙석촌 마을 들녘.
추수를 마친 빙석촌 마을 들녘.
산국이 화사하게 핀 서울문산고속도로 절개면. 
산국이 화사하게 핀 서울문산고속도로 절개면. 
청대골에서 바라본 북한산 조망. 
청대골에서 바라본 북한산 조망. 
견달산누리길의 종착점인 원당천. 
견달산누리길의 종착점인 원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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