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⑪ 송강누리길

크고 작은 물줄기 아우르며 흐르는 공릉천  
수량 풍부하고 맑아 물고기와 새들 깃들고
징검다리에서 조망하는 북한산 풍경 ‘으뜸’ 

관산동 물구리골 능골… 한가로운 천변마을
슬픈 역사의 주인공 월산대군과 그의 후손들 
송강 정철의 이야기 흐르는 송강마을·송강보

[고양신문] 고양 땅을 지나는 하천 중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하천은 누가 뭐래도 공릉천이다. 원당천 둑방길에서 출발해 곧바로 공릉천과 만나는 송강누리길은 한가로운 강 풍경과 건너편 관산동 마을을 바라보며 걷다가 물구리천을 만나 원신동 마을로 들어선 후, 매봉산을 빙 돌아 월산대군 사당을 알현한고는 송강마을을 거쳐 다시 공릉천 둑방길로 올라선다. 이곳에서 송강누리길의 으뜸 경관을 감상한 후 통일로를 건너 여정을 마무리한다. 아름다운 공릉천 둑방길과 한가로운 마을길도 두루 아우르는 6.6km의 평탄한 코스를 가을 오후에 걷게 되니 발걸음이 설렌다.

원당천 출발해 공릉천과 합류

견달산누리길과 송강누리길이 바통 터치를 하는 쥬라리움은 계절별 이벤트를 즐길 수 있어서 가족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로봇박물관, 드론체험장 등 새로운 콘텐츠로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비포장 둑방을 걷다 보니 공릉천 물길 건너로 고양외고와 관산동 아파트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물가에는 버드나무와 갈대숲 사이로 백로, 왜가리와 물오리들이 노닐고 있다. 자연하천의 모습을 간직한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 보니 하중보인 선우궁보가 나타난다. 예전의 낡은 수중보를 대신해 물고기의 길을 살려 깔끔하게 정비했다. 호수처럼 수량이 넉넉한 선우궁보 상류 수면 위로 관산동과 북한산의 모습이 반영된다.     

공릉천 둑방 메타세쿼이아길.
공릉천 둑방 메타세쿼이아길.

다섯 개의 하천 차례차례 만나

공릉천은 양주에서 발원해 고양과 파주를 거쳐 한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한강을 제외하면 고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량이 많은 물줄기다. 고양시 통과 구간은 13.8km에 불과하지만 선유동, 신원마을, 송강마을, 관산동, 사리현동, 내유동 등 고양시 북쪽의 마을을 두루 감싸며 다채로운 풍광을 보여준다. 

공릉천이라는 이름은 파주 삼릉 중 하나인 공릉(恭陵)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왕실을 폄훼하려는 의도에서 곡릉천(谷陵川)이라는 왜곡된 명칭이 붙여져 오랫동안 사용되다가, 2009년에 이르러서야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고양 사람들은 구간에 따라 심천(깊으내), 신원천 등의 옛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공릉천은 고양시를 지나며 4개의 지방하천과 9개의 소하천이 보태지는데 오늘 걷는 송강누리길 여정에서는 원당천, 물구리천, 능골천, 벽제천, 대자천을 순서대로 만나게 된다. 

다행히도 자연하천으로서의 자정능력을 잘 간직한 덕분에 공릉천 수질은 전반적으로 깨끗하다. 덕분에 피라미와 각시붕어, 돌고개, 모래무지와 같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천연기념물인 원앙과 수리부엉이도 공릉천에서 번식한다. 무엇보다도 겨울을 앞둔 이즈음에는 다양한 겨울철새들이 날아든다.

선우궁보 너머로 보이는 관산동과 북한산. 
선우궁보 너머로 보이는 관산동과 북한산. 

기찻소리 멈춘 교외선 건널목

관산동마을로 다가갈수록 천변을 따라 나지막한 빌라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은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70~80년대 통일로를 따라 상가와 주택가가 밀집되며 형성된 관산동에는 행정복지센터와 농협, 파출소, 학교가 모여있어 여전히 활기가 넘치는 마을이다.

사과농장과 원당화훼단지를 지나온 길은 원당교에 다다르기 전 물구리천이라는 소하천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대형 베이커리카페와 수영장을 지나자 교외선 철길 건널목이 나온다. 기차가 달리지 않는 철로에는 들풀이 무성하다. 1960년대부터 기적소리를 울렸던 교외선은 이용객 감소로 2004년부터 운행이 중단됐지만, 현재 운행재개를 위한 본격적인 시동이 걸려다. 몇 년 후에는 이 마을에서도 다시금 기찻소리를 듣게 될 것 같다.  

기차 운행이 중단된 교외선 철길. 
기차 운행이 중단된 교외선 철길. 

세조의 맏손, 성종의 친형 월산대군 

물구리천을 건너 왼쪽 마을로 들어선다. 예로부터 물이 넉넉해서 물구리촌이라 불렸다는 마을 입구에서 커다란 느티나무가 나들이꾼을 반기고, 잎을 떨군 감나무에는 탐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물구리마을은 조선 7대 임금 세조의 맏손자이자 9대 임금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 이정(月山大君 李婷)의 후손들이 터를 잡은 마을이다. 임금의 맏손자였으니, 순리대로라면 왕위를 이었을 장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 의경세자가 일찍 사망하자,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어린 월산대군 대신 삼촌 예종이 세자에 책봉되고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예종마저 일찍 눈을 감자 이번에는 월산대군의 동생 자율산군이 왕좌에 오르니, 바로 성종임금이다. 두 번씩이나 임금이 될 기회를 놓쳐버린 월산대군의 불행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훗날 손자인 계림군과 증손자들이 조작된 역모죄에 몰려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물구리마을에서 작은 고개 넘으면 신원동 능골마을인데, 월산대군의 사당인 석광사(錫光祠)가 나타난다. 작고 단아한 건물을 네모반듯한 담장이 두르고 있다. 사당 앞에는 수령이 250년이나 됐다는 회화나무가 서 있는데, 수명을 다한 듯 가지는 모두 잘리고 나무기둥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월산대군 사당인 석광사. 
월산대군 사당인 석광사. 

송강의 작품 만나는 송강시비공원

호국로를 만나 공릉천을 향해 내려오면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송강마을이 나타난다. 과거 송강이 살았던 집터에는 송강문학관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건물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은 두 가지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문장력을 지닌 가사문학의 대가로 칭송받고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남다른 정치 감각으로 서인의 영수 노릇을 하며 정쟁의 한가운데에 자리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송강누리길이 지나는 원신동 일대에는 송강마을, 송강들, 송강고개, 송강보 등 정철과 관련된 지명과 일화들이 풍성하게 전해온다. 

공식적인 고양누리길 코스에 포함되지 않은 곳이지만, 호국로를 잠시 건너가 송강시비공원(松江詩碑公園)을 둘러보고 오자. 이곳에서는 송강 정철을 기념하는 다양한 조형물과 함께 송강의 작품을 자연석에 새겨 넣은 아름다운 시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송강시비공원에서 상류인 신원마을 방향으로 둑방길을 따라 ‘송강 공릉천 공원’이 이어지지만, 우리는 고양누리길 코스로 복귀하기 위해 다시 호국로를 건너도록 하자. 

송강의 작품을 새겨 넣은 다양한 시비들을 감상할 수 있는 송강시비공원. 
송강의 작품을 새겨 넣은 다양한 시비들을 감상할 수 있는 송강시비공원. 

징검다리 위에서 바라본 북한산 절경 

호국로 건너편 능골천이 공릉천과 합류하는 지점에는 송암보가 공릉천 물을 넉넉히 가두고 있다. 오래전부터 사용된 신원교, 공릉천과 통일로를 훌쩍 뛰어넘는 벽제육교, 기차소리가 멈춘 교외선 철교가 순서대로 시야에 들어오며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송암보를 지나면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나들이 명소 플랜테이션이 나타나고,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정비된 둑방길이 이어진다. 걷는 내내 매조산과 노고산 능선 너머 북한산 영봉들이 조망되는 까닭에 자꾸만 멈춰 서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메타세쿼이아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천변으로 내려가면 징검다리와 이어진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이들은 누구나 중간에 한번쯤은 멈춰서곤 한다. 공릉천의 소실점에 북한산이 얹히는 기가 막힌 구도가 징검다리 위에서 포착되기 때문이다. 고양누리길 코스 전체를 통틀어 으뜸을 다툴 만한 절경이라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이 없을 듯하다.

공릉천 징검다리 위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모습. 
공릉천 징검다리 위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모습. 

문화체육공원과 필리핀 참전비

징검다리를 건너면 너른 잔디밭과 운동시설, 경사면을 따라 스탠드가 갖춰진 공릉천 문화체육공원이다. 고양군 시절에는 이곳 관산동 공릉천변이 대규모 행사의 단골 무대였다. 고양국제꽃박람회의 전신인 고양꽃전시회도 이곳에서 열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일상 속 쉼터로 관산동 주민들의 여전한 사랑을 받고 있다. 

둑방 위로 올라와 통일로를 건너면 하얀색 탑신이 하늘로 솟아있는 필리핀군 참전기념비가 나타난다.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군대를 파견해 450여 명의 적지 않은 사상자를 냈다. 세월이 흐르며 국가의 상대적 위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럴수록 과거 참전국들이 보여준 우정과 희생을 보다 소중히 예우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송강누리길 코스는 끝났지만, 기자는 걸음수를 좀 더 채울 요량으로 출발점이었던 쥬라리움으로 향한다. 실은 그곳에 차를 세워두었기 때문이지만, 공릉천과의 저녁 데이트를 연장할 수 있으니 얼마나 잘한 일인가.

통일로변에 자리하고 있는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통일로변에 자리하고 있는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송강누리길 걷기 정보 
- 코스 길이 : 6.6㎞
- 소요 시간 : 1시간40분~2시간 20분
- 출발점 : 쥬라리움 앞 원당천 둑방길 
- 도착점 : 통일로변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 경관·휴식 포인트 : 물구리천 느티나무, 월산대군 사당, 선우궁보와 송강보 조망, 송강시비공원, 징검다리 북한산 경관
- 화장실 : 3곳(고양화훼단지·플랜테이션 개방화장실, 공릉천 체육공원) 
- 뒤풀이 맛집 : 관산동 시내 음식점

물구리마을에서 나들이꾼을 반기는 느티나무. 
물구리마을에서 나들이꾼을 반기는 느티나무. 
송강보 위를 가로지르는 교외선 철교.
송강보 위를 가로지르는 교외선 철교.
메타세쿼이아길의 석양. 
메타세쿼이아길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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