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13) 오선누리길

일주일 새 낙엽 모두 떨군 참나무숲
자연하천 아름다운 보여주는 공릉천 상류 
신선유교와 상산보 전망대의 멋진 풍광

큰골마을 고개 넘으면 신축빌라 별천지 
오금상촌공원까지 이어진 천변 산책로
고양누리길 따라 완성한 커다란 폐곡선 
 

[고양신문] 불과 일주일 사이에 숲의 참나무들이 낙엽을 모두 떨구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목(裸木)이 됐다. 지난주 고양동누리길을 마무리하며, 그리고 이번주 오선누리길을 시작하며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비교해보니 차이가 확연하다. 숲의 시간은 냉정해서 가을을 떠나보내기 싫은 나들이꾼의 아쉬움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양누리길 13코스 오선누리길은 오금동(梧琴洞)과 선유동(仙遊洞)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길 이름을 붙였다. 나지막한 숲길과 공릉천 물길, 한가로운 자연마을과 오금천을 따라 새롭게 들어선 삼송택지지구 주거단지를 차례차례 만나며 5.7km를 걷는다. 12코스 고양동누리길의 종점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오금상촌공원에서 2코스 한북누리길의 중간지점과 만난다. 

오선누리길의 출발점인 안장고개 숲길.
오선누리길의 출발점인 안장고개 숲길.

서리골, 노고산, 북한산이 한눈에

오선누리길의 출발점인 안장고개에서 두툼한 낙엽 이불을 깐 숲길로 올라선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의 산길은 쓸쓸하면서도 산뜻한 서정을 품고 있다.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훤히 올려다보인다.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은 생장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길고도 추운 생존의 시간을 준비한다. 아직 겨울은 아니지만, 어릴 적 즐겨 불렀던 ‘겨울나무’라는 노래의 2절 가사를 흥얼거려본다.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언덕마루에 오르니 동쪽으로 시야가 탁 트이고, 멋진 풍경화가 펼쳐진다. 근경에는 호젓한 선유동 서리골마을이, 중경에는 부드러운 노고산 능선이, 그리고 원경에는 또다시 고양누리길의 시그니처 뷰인 북한산의 우람한 실루엣이 하나의 시선에 중첩된다. 배경이 아름다우니 군데군데 끼어든 고압선 송신탑마저 풍경의 다채로움을 거드는 양념처럼 느껴진다.

선유동 서리골 마을 뒤로 펼쳐진 노고산과 북한산 풍광.
선유동 서리골 마을 뒤로 펼쳐진 노고산과 북한산 풍광.

이름도 특이한 불미지 마을

고양누리길을 순서대로 걷다 보면 길이 조성된 시기에 따라 새로운 디자인이 추가된 안내판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오선누리길에는 배낭을 메고 소풍을 나선 귀여운 고양고양이가 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숲길의 내리막에서 군부대 울타리를 만나는데, 날카로운 윤형 철조망이 좁은 오솔길 폭을 절반쯤 잡아먹으며 이중 삼중으로 처져 있어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철조망길을 지나 마을길로 내려서자 이번에는 커다란 검정개가 사납게 짖어댄다. 아름다운 오선누리길의 진면목을 만나려면 초장에 이 정도의 신고식은 치러야 하나 보다.

선유동길과 교외선 철길, 공릉천 물길이 만나는 동네 이름은 불미지(佛彌池)마을이다. 부처님과 미륵과 연못을 아우르고 있으니, 이름이 심상찮다. 두어 달 전에 불미지마을을 찾았을 때는 비닐하우스 앞마당마다 화사한 국화 화분이 채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텅 비었다. 불미지마을에서도 노고산과 북한산이 사이좋게 건너다 뵌다.

선유천과 교외선 철교.
선유천과 교외선 철교.

오선누리길 으뜸 풍경 ‘신선유교’

선유동 남쪽을 감싸고 이어진 교외선 철길과 선유동 실개천인 선유천이 교차하는 지점에는 교각이 두 개 뿐인 작은 철교가 놓여있다. 철교 밑을 통과한 선유천은 곧 공릉천과 합류한다. 공릉천에는 보행자와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는 신선유교라는 다리가 놓였는데,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공릉천과 북한산 풍경이 그야말로 오선누리길의 으뜸 경관이다. 

공릉천이 통과하는 고양시 구간은 13.8km인데, 그중 가장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바로 청천수와 상산보로 이어지는 선유동 일대이고, 그 한가운데에 신선유교가 자리한다. 이곳에서 만나는 공릉천은 송강누리길에서 만났던 공릉천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잠시 다리 위에 다리를 쭉 펴고 주저앉아 공릉천 수면 위로 비늘조각처럼 부서지는 가을 햇살에 마음을 맡겨본다.

신선유교와 공릉천과 북한산. 9월 모습이다.  
신선유교와 공릉천과 북한산. 9월 모습이다.  
위 사진과 같은 장소에서 11월에 찍은 모습.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이다.
위 사진과 같은 장소에서 11월에 찍은 모습.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이다.

다리를 건너면 등나무 터널길이다. 울창하게 맞닿은 등나무 덩굴들이 한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줬는데, 지금은 이곳도 가을 정취가 물씬하다. 바닥에는 낙엽이 깔리고, 아치에는 길쭉한 꼬투리들이 줄줄이 매달렸다.   

수명 다한 정수장의 화려한 변신 

등나무 터널을 지나면 키 큰 느티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심겨진 넓은 마당이 나타나는데, 과거 혜지낚시터가 있던 자리다. 발끝에 채이는 낙엽을 즐기며 조금 더 걸어가면, 왼쪽으로 고양아쿠아스튜디오가 나타난다. 80년대까지 관산동과 원당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고양정수장이 있던 자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수중촬영의 메카로 변신했다. 

그동안 고양아쿠아스튜디오에서 수중장면을 촬영한 영화들이 부지기수라는데, 가장 유명한 영화는 역시나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부문을 휩쓴 <기생충>이다. 울타리 안쪽을 넘겨다보니 <명량>의 해상전투장면을 찍을 때 사용됐던 목선이 비스듬한 자세로 마당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들의 세트나 소품 등을 보다 풍부하게 아카이빙했더라면 좋은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혜지낚시터 자리 인근의 느티나무 낙엽길.
혜지낚시터 자리 인근의 느티나무 낙엽길.

오른쪽 둑방에 만들어진 전망대에 올라서니 과거 공릉천을 막아 수돗물 원수를 취수하던 상산보(上山堡)가 내려다보인다. 이름이 상산보인 이유는 건너편 바위언덕 이름이 상산봉(上山峰)이기 때문이다. 단풍이 물든 바위절벽, 그리고 그 앞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옛사람들이 이곳을 공릉천의 명승으로 꼽은 이유를 설명해주고도 남는다. 상산봉 정상에 오르면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지금은 군사시설이 전망을 독점하고 있다.   

상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상산과 상산보. 
상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상산과 상산보. 

지도에서 사라진 오금천변 자연마을들

공릉천 풍경과 작별을 고하고 수도권제1순환도로 하부도로를 따라 걷는다. 방음벽 삼아 빼곡이 심어놓은 느티나무들도 가을빛으로 물들어 나름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길은 오금동 큰골로 이어지는데, 깔끔한 외양을 자랑하는 신축 주택과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구옥(舊屋)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큰골 고개를 지나니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진다. 오금천을 따라 길게 터가 닦인 삼송택지개발지구 단독용지에는 ○○라피아노, ○○더빌리지 등의 이름을 단 신축 빌라단지들이 빼곡하다. 오송산과 기슭을 따라 펼쳐진 오금동 일대에는 택지개발 전 삼막골, 독정말, 큰골, 상촌, 중촌, 하촌, 모장말 등 한가로운 자연마을이 띄엄띄엄 자리했었는데, 지금은 공원과 하천이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고개를 들면 건너편 빌라 지붕 위로 북한산이 조망되는 명품 주거단지로 변신했다. 한자를 들여다보면 오동나무(梧)로 거문고(琴)를 만들던 동네라는 뜻이다. 오금동의 새 주인이 되는 이들도 예쁜 마을이름에 애착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오금천을 따라 조성된 주택단지. 
오금천을 따라 조성된 주택단지. 

한북누리길과 만나는 오금상촌공원

부분적으로 택지개발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까닭인지, 고양누리길 이정표는 큰골 고개를 지나며 실종된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오금천 공원만 찾아 둔치 산책로를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오선누리길의 종착점인 오금상촌공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공원길에는 저녁산책을 즐기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두어달 전만 해도 물가식물들이 무성했던 오금천 둔치를 포크레인으로 바닥 자갈이 시커멓게 드러날 정도로 온통 긁어버렸다.

새로 천변공원을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인지, 아니면 생태교란식물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천변에 깃들어 살던 다양한 생명들의 거처를 일거에 밀어버린 것만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지, 조만간 다시 오금천변을 찾아와봐야 할 것 같다.  

오금천변 산책로. 9월에 찍은 모습.
오금천변 산책로. 9월에 찍은 모습.

오금천 산책로가 일영로와 만나는 지점인 오금상촌공원에서 오선누리길이 끝난다. 앞서 말했듯 이곳은 고양누리길 2코스 한북누리길이 지난다. 고양누리길을 순서대로 밟아 고양시를 크게 한 바퀴 돌고 3개월 만에 원형의 폐곡선을 완성했다. 

그 사이 풍경은 확 달라졌다. 8월에 올린 한북누리길 탐방기사 사진들을 열어보니 나무들이 온통 푸르른 색인데, 어느새 갈색의 마른 잎마저 지면으로 돌려보냈다. 일영로 주변에 터를 닦던 공사현장에는 높은 건물이 우뚝 올라와 노고산 산자락을 가린다. 어느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말한 “어느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문구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 경험의 관계를 가장 명쾌하게 통찰한 지혜가 담겨 있다. 오늘은 오늘의 길을 걸었으니, 내일은 내일의 길을 걸어야겠다.           

오선누리길의 종착점인 오금상촌공원. 
오선누리길의 종착점인 오금상촌공원. 

❚오선누리길 걷기 정보 
- 코스 길이 : 5.7㎞
- 소요 시간 : 1시간 30분~2시간 
- 출발점 : 선유동 안장고개
- 도착점 : 오금상촌공원 
- 경관·휴식 포인트 : 신선유교, 등나무터널, 상산전망대, 오금천 산책로
- 화장실 : 1곳(오금상촌공원) 
- 뒤풀이 맛집 : 일영로 주변 음식점

 

낙엽을 대부분 떨군 참나무숲.
낙엽을 대부분 떨군 참나무숲.
불미지마을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모습. 
불미지마을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모습. 
폐 정수장을 활용해 만들어진 고양아쿠아스튜디오.
폐 정수장을 활용해 만들어진 고양아쿠아스튜디오.
신선유교를 건너면 나타나는 등나무 터널.
신선유교를 건너면 나타나는 등나무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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