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3) 서삼릉누리길

삼송역에서 원당역까지 이어주는 8.28㎞
구불구불 숲길 지나면 한가로운 마을길  
약수터에서 목 적시고, 노천카페서 쉬고 

드넓은 능역 잃어버린 서삼릉의 슬픈 역사 
고양 땅 옛 이름 짚어보는 재미도 쏠쏠 
구도심 정서 남은 원당서 다리품 마무리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 숲길.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 숲길. 

[고양신문] 고양누리길 연재 기사를 보고 한 독자가 “왜 코스 소요시간을 고양시 리플릿에 적혀있는 시간보다 길게 소개했냐?”고 물어왔다. 사실이다. 산길이나 누리길을 소개하는 공식 책자나 리플릿에서는 ‘성인의 보통 걸음 속도’와 코스 거리를 곱해 소요시간을 산정한다. 

하지만 기자가 제안하는 누리길 걷기는 ‘정속 주행’이 아니다. 소요시간을 살짝 연장한 속내에는 풍경도 감상하고, 힘들면 쉬어가는 느긋한 나들이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 고양누리길 3코스 서삼릉누리길 역시 발길을 멈춰야 할 명소들이 이어지는 멋진 길이다. 

삼송역 5번 출구 앞에 서 있는 서삼릉누리길 종합안내판.
삼송역 5번 출구 앞에 서 있는 서삼릉누리길 종합안내판.

서삼릉누리길의 출발점과 도착점은 삼송역과 원당역이다. 최대한 홀가분하게 이동해야 하는 도보 나들이의 특성상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이 두 정거장 거리의 전철역으로 똑 떨어진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코스는 ▶삼송역 ▶사탐말산길 ▶솔개약수터 ▶농협대 ▶서삼릉 ▶서삼릉 태실권역 ▶수역이마을 ▶원당역까지 8.28㎞다. 전철로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숲길과 마을길, 왕릉과 먹거리마을을 두루두루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보자.    

옛 흔적을 거니는 ‘삼송리·세수리’

고양군이 고양시로 승격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옛 행정구역명이냐고 타박하거나 말거나, 고양의 토박이들은 여전히 “삼송리, 세수리”라는 지명을 입에 달고들 있다. 기억과 정서가 말을 붙들고 있기 때문인가보다. 

삼송역 부근 대로변에는 70~80년대 주택의 전형적인 디자인인 삼각지붕에 작은 다락방이 있는 단층주택들이 줄지어 있는데, 지금은 하나같이 식당, 미용실, 부동산 등의 간판을 내걸고 있다. 

삼송역 인근 대로변에 줄지어 있는 삼각지붕 주택들. 
삼송역 인근 대로변에 줄지어 있는 삼각지붕 주택들. 

출발하고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서삼릉누리길의 첫 번째 경관포인트가 나타난다. 바로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선 고양고등학교 정문 진입로다. 과거 ‘고양종합고등학교’와 ‘고양중학교’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던 고양고의 드넓은 교정은 웬만한 전문대 캠퍼스보다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세수리마을에는 신축 빌라들이 많이 들어섰다. 삼송(三松)과 세수(三樹), 발음은 다르지만 둘 다 세 그루의 커다란 나무라는 뜻이다. 과거 왕릉 초입의 마을이었던 이곳에 기개가 우람한 장송(長松) 세 그루가 서 있었다고 한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고양고등학교 진입로.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외부인이 학교 정문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기자 역시 정문 앞에서 카메라로 멋진 모습을 담는 데 만족해야 했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고양고등학교 진입로.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외부인이 학교 정문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기자 역시 정문 앞에서 카메라로 멋진 모습을 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야자섬유매트가 고마운 사탐말산 숲길 

세수리 뒷산인 사탐말산 산길로 접어든다. 소나무, 상수리나무, 층층나무, 팥배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준다. 하지만 사탐말산 숲길은 한북누리길에서 걸었던 오송산 숲길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오송산 숲길이 평탄하고 곧게 뻗은 길인 반면, 이곳은 구불구불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직선은 직선대로, 곡선은 곡선대로 서로 다른 재미가 있다. 고맙게도 경사진 구간마다 가로줄이 새겨진 야자섬유매트가 깔려있어서 미끄럼을 방지해준다. 

경사로마다 깔려 있는 야자섬유매트.
경사로마다 깔려 있는 야자섬유매트.

고양누리길 14개 코스는 한날한시에 만들어진 길들이 아니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순차적으로 조성된 까닭에 각각의 누리길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안전시설과 안내표지 등이 설치돼 있다.   

길은 생태육교를 통해 원흥역과 신원마을을 잇는 권율대로 위를 건너간다. 폭도 넓고 수목도 울창해 ‘생태육교’라는 이름값을 할 것 같다. 산길 중간중간 샛길과 갈림길이 반복되기 때문에 이정표를 놓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서삼릉누리길에도 이여송과 숫돌고개, 거북바위, 서삼릉과 솔개마을 등 흥미로운 스토리보드들이 군데군데 나들이꾼을 맞는다. 

거북바위와 돌무지. 
거북바위와 돌무지. 

시원하고 수량 풍부한 세솔약수터 

울타리 너머로 뉴코리아 골프장을 살짝 구경한 후 산길에서 내려오면 솔개마을이다. 솔개마을도 솔고개(松峴)마을에서 유래한 이름이니까, 이 주변 역시 소나무숲이 근사했었나보다. 마침 가쁜 숨을 쉬어가기에 딱 좋은 쉼터가 나타난다. 솔개(천일)약수터다. 공식 간판은 천일약수터라고 걸려 있다. 과거 천일농장이라는 커다란 식당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는 ‘솔개약수터’라는 예쁜 이름을 걸어주었으면 좋겠다.   

고양시가 관리하는 공공약수터 중 한 곳인 솔개약수터 안내판에는 ‘수질검사 적합’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물 한 모금을 두 손으로 받아 마셔보니 달고 시원하다. 올여름 비가 적게 왔는데도 수량도 풍부하다. 약수터 주변의 테이블과 운동시설도 깔끔하게 청소가 돼 있어, 이곳을 즐겨 찾는 이웃 주민들의 세심한 정성이 느껴진다.

찾는 이가 많은 솔개약수터. 
찾는 이가 많은 솔개약수터. 

천일약수터에서부터는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 천일농장이 있던 자리에는 마당을 아름답게 가꾼 ‘큰숲 홍익교회’가 자리하고 있고, 서삼릉 방향으로 고개를 넘으면 농협대학교가 나타난다. 농협대 정문 진입로 좌우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도열해 있다. 가을에 찾아오면 멋진 풍광을 선사해줄 것 같다. 정문 건너편에는 경기도민텃밭이 새롭게 조성됐다. 밭이랑 사이를 오고 가는 도시농부들의 발걸음이 여유롭다.     

농협대 정문 건너편에 새로 조성된 경기도민텃밭.
농협대 정문 건너편에 새로 조성된 경기도민텃밭.

상처 속 품위 간직한 서삼릉

길은 고양의 유서 깊은 맛집 ‘너른마당’ 앞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원당역까지 서둘러 완주하려면 직진해야 하지만, 서삼릉을 만나보려면 오른쪽길로 잠시 들어갔다 와야 한다. 다리품을 조금 팔더라도 이번 코스의 주인공을 건너뛰지 말자.

서삼릉으로 향하는 길은 아름답지만 마음이 조금 복잡하다. 농협 젖소개량사업소와 마사회 목장 등이 신성하게 보존돼야 할 왕릉 주변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얀 울타리 너머 푸르른 초지 위로 말들이 노니는 모습이 이국적 경치를 선사한다고들 하지만, 아무래도 왕릉 곁에 어울리는 풍경일 수는 없다. 

광릉숲보다 더 울창했다는 100만여 평 서삼릉 능역 대부분이 잘려나가고, 삼릉(三陵) 중 하나인 효릉은 아예 접근조차 못하는 섬이 되어버린 상황이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 1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서삼릉 희릉(禧陵).
서삼릉 희릉(禧陵).

아쉬운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禧陵), 그리고 조선의 예법을 따라 조성한 마지막 왕릉인 예릉(睿陵, 철종과 철인황후)을 거닐어보자. 홍살문에서 이어지는 향로와 어로, 정자각과 수복방, 능침을 지키는 석상,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장송들…. 비록 사방으로 상처를 입었다지만, 간결하면서도 초라하지 않은 조선왕릉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

서삼릉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나무그늘 사이에 자리한 푸드트럭 노천카페에 들러봐도 좋다. 왕릉으로 가는 한적한 길가에서 오래도록 장사를 이어오며 조용히 입소문을 탄 명소 중 하나다. 

단골 손님도 은근히 많은 서삼릉길 노천카페. 
단골 손님도 은근히 많은 서삼릉길 노천카페. 

가끔 지루한 길도 누리길의 일부 

너른마당에서 수역이마을로 가는 길은 서삼릉누리길 코스 중 조금 지루한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왼쪽으로는 한양골프장 울타리를 끼고 좁은 찻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데, 도보가 확보되지 않아 오고 가는 차량이 신경 쓰인다. 메마른 날에는 흙먼지도 각오해야 한다. 

이처럼 고양누리길을 걷다 보면, 종종 불편하고 협소한 구간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툴툴거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떤 길인들 처음부터 끝까지 안락하고 멋진 코스로만 연결될 수 있겠는가. 즐거움 사이사이에 지루함이 살짝 끼어드는 고양누리길은 우리의 일상과 참 닮아 있는 길이다.   

지루한 구간을 걷다가 만난 길가의 봉숭아꽃. 
지루한 구간을 걷다가 만난 길가의 봉숭아꽃. 

걷다 보면 오랜 세월 단단히 문을 걸어두었다가 지난해 비로소 시민들에게 개방된 서삼릉 태실권역 입구를 지난다. 일제강점기와 개발지상주의 시대를 지나온 역사의 상처가 겹겹이 배어있는 곳이다. 길은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중앙수련원 앞을 지나 수역이마을로 이어진다.

이름도 특이한 수역이마을, 사근절천

원당 호국로에서 서삼릉 방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한 수역이마을은 소문난 먹거리촌이다. 두부집, 보리밥집, 주꾸미볶음, 고깃집 등 다양한 메뉴의 식당들이 길을 따라 자리하고 있고, 최근에는 마당 넓고 시설이 쾌적한 카페들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아쉽게도 서울문산고속도로가 수역이마을 끄트머리를 잘라먹어 커다란 하부터널로 통행해야 한다.

수역이마을을 가로지른 서울문산고속도로의 하부 터널. 
수역이마을을 가로지른 서울문산고속도로의 하부 터널. 

수역이마을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한다. 장수(長壽)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수역리(壽域里)라고 불렀다고도 하고, 물이 넉넉해서 수역(水域)이가 됐다고도 한다. 일부 주민들은 수역이라는 발음이 변형된 쇠기마을, 쐐기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수역이마을을 지나면 주말농장과 한적한 마을길이 이어지다가 작은 하천길을 만난다. 사근절천이다. 오래 전 사근사(沙斤寺)라는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마을에서는 “빈대가 많아 절이 삭아 없어져서 삭은절, 사근절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책으로 접할 때는 잘 외워지지 않던 고양의 옛 지명들이 길을 걸으며 되새기니 쏙쏙 머릿속에 들어온다. 

맛집들이 이어진 수역이마을 먹거리촌. 
맛집들이 이어진 수역이마을 먹거리촌. 

뒤풀이는 먹자골목? 원당시장?

사근절천을 지나 원당역까지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고양에 뿌리를 둔 명문가인 행주기씨(幸州奇氏) 종중과 선산 입구를 지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원당역에서 이어지는 기찻길 고가 아래 유휴부지에 조성한 생태공원을 통과하는 길이다. 코스가 길지 않아 두 군데를 다 돌아봐도 좋다. 

어느덧 서삼릉누리길 나들이의 종착점인 원당역에 도착했다. 1번 출구 계단 아래,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로 좌판을 펼쳐놓은 아주머니 서넛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 정겹다.

다양한 음식들을 포장해 갈 수 있는 원당시장. 
다양한 음식들을 포장해 갈 수 있는 원당시장. 

나들이 뒤풀이를 어디에서 하면 좋을까. 원당역 뒤편에 커다란 식당도 두어 곳 있고, 성사동 구도심에는 골목식당들이 여럿 모여있다. 좀 더 행복한 고민을 경험하고 싶다면 원당시장을 찾아가자. 노점 음식의 대명사인 떡볶이, 김밥, 순대 등은 물론, 족발과 야채곱창, 새우튀김과 군만두, 문어숙회와 홍어무침…. 잔칫상처럼 펼쳐진 군침 도는 음식들이 나들이꾼의 발걸음을 곳곳에서 붙들어 세운다.

❚서삼릉누리길 걷기 정보 
코스 길이 : 8.28㎞
소요 시간 : 2시간 20분~50분
출발점 : 삼송역 5번 출구
도착점 : 원당역 1번 출구 
경관포인트 : 고양고 메타세쿼이아길, 서삼릉 희릉·예릉, 서삼릉길 노천카페
화장실 : 3곳(삼송역, 서삼릉, 원당역) 
뒤풀이 맛집 : 수역이마을 먹거리촌, 성사동 골목식당, 원당시장

서삼릉으로 가는 갈림길에 자리한 '너른마당'. 한옥 건물이 멋진 고양의 맛집이다. 
서삼릉으로 가는 갈림길에 자리한 '너른마당'. 한옥 건물이 멋진 고양의 맛집이다. 
두어시간만 피었다가 진다는 벼꽃. 서삼릉누리길을 걷다가 귀한 벼꽃의 개화를 목격했다.
두어시간만 피었다가 진다는 벼꽃. 서삼릉누리길을 걷다가 귀한 벼꽃의 개화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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