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⑧ 경의로누리길

정발산~일산역~탄현역~황룡산 잇는 7.24㎞
정발산 평심루 올라서면 북한산이 한눈에 
경의선 기찻길 따라 이어진 녹색의 산책로 

과거~현재 이어주는 일산역전시관·일산시장 
와야촌, 독점말, 숯고개… 정겨운 옛 이름 
황룡산 아랫자락에서 여유로운 산책 마무리

[고양신문] 어느덧 고양누리길 14코스 나들이의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고양누리길 8코스와 9코스를 걸으며 일산의 ‘빅3’ 산인 정발산과 황룡산, 고봉산을 차례대로 오르게 된다. 사실 ‘빅3’라고 말한 건 농담이고, 순서대로 해발 88m, 130m. 206m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들이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에게는 하나같이 더없이 소중한 녹색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양누리길 8코스 경의선누리길은 ▶정발산공원 ▶풍산역 ▶경의선 녹지공원 ▶일산역 ▶일산기찻길공원 ▶탄현큰마을 ▶탄현근린공원으로 이어지며, 길이는 7.24㎞다.   

고양아람누리 뒤뜰의 사재정과 연못. 
고양아람누리 뒤뜰의 사재정과 연못. 

아람누리 뒤뜰의 한가로운 쉼터 

경의선누리길의 출발점은 정발산역이다. 이곳에서 곧바로 정발산 등산로로 들어설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고양아람누리 뒤뜰을 지나는 코스를 선택해보자. 일산을 대표하는 문화시설인 고양아람누리는 공연이나 미술관람이 아니더라도 나들이 삼아 산책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며 아람극장 뒤편으로 향하면 잔디밭과 농구장을 지나 정자와 연못이 있는 작은 공원이 나온다. 사재정(思齋亭)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에서 연못을 가득 메운 연잎을 바라보는 운치가 한가롭다.  

정발산을 오르는 나무계단 숲길.
정발산을 오르는 나무계단 숲길.

정발산 오르막길은 지형에 따라 소나무 뿌리가 여기저기 드러난 흙길과 나무계단, 야자매트가 깔린 구간이 번갈아 나타난다. 산은 작지만, 이용자가 많은 도심 숲답게 샛길이 여기저기로 뻗어 있어 여건이 된다면 구석구석 다양한 코스를 밟아볼 수 있다.   

넉넉한 삶을 기원했던 정발산 

정발산은 예로부터 일산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에 자리한 산이었다. 낙민마을, 강촌마을, 설촌마을, 냉촌마을, 닥밭마을, 놀메기마을 등 정발산 아랫자락을 둘러싼 마을 주민들은 2년에 한 번씩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정발산 도당굿을 열었는데, 고양 땅 다른 곳의 어떤 굿보다 규모가 컸다고 전해진다. 일산신도시의 중심공원이 된 오늘날에는 아침저녁으로 건강체조 음악소리가 신명났었는데, 코로나로 모든 야외활동이 중단돼 그리운 풍경이 됐다. 

정발산 정상에 자리한 평심루.
정발산 정상에 자리한 평심루.

정발산(鼎鉢山)은 솥과 주발을 엎어놓은 듯 민둥하게 솟아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커다란 솥처럼 살림살이가 넉넉하기를 바랐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이름에 담긴 듯하다.

정발산의 하이라이트는 듬직하게 정상을 지키고 있는 평심루(平心樓)다. 여섯 칸 규모의 넓은 누마루에 올라서서 시선을 동쪽으로 향하면 북한산의 웅장한 산세가 정면으로 조망되는데, 아쉽게도 기자가 오른 날은 시야가 흐려서 북한산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평심루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아쉽게도 기자가 찾은 날에는 시야가 흐려서 희미한 윤곽만 보였다.  
평심루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아쉽게도 기자가 찾은 날에는 시야가 흐려서 희미한 윤곽만 보였다.  

새들이 물 마시는 생태학습원 습지  

평심루에서 마두도서관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넓은 아스팔트길이다. 길가에서 마주친 기념석에는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고양 일산지구 중앙공원 조경공사를 1992년에 시작해 1995년에 마무리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내리막길 왼쪽에는 상부를 파크골프장으로 꾸민 정발산 배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정발산 덕분에 일산의 아파트 전역에 상수도를 공급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배수지를 지나면 생태학습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습지가 나타난다. 변변한 물길이 없는 정발산에 깃들어 사는 새들에게 생태학습원 습지는 아주 고마운 보금자리다. 

일산신도시 조성과 함께 개관한 마두도서관은 정발산 산책의 연계코스로 사랑을 받아왔는데, 최근 내부 리모델링을 마치고 보다 쾌적하고 세련된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작은 습지가 있는 생택학습원.
작은 습지가 있는 생택학습원.

감성 두드리는 밤리단길·보넷길

정발산을 내려와 육교로 일산로를 건너면 밤가시공원이 나타난다. 좌우에는 분위기 있는 앤틱숍과 공방, 트렌디한 카페, 맛집이 구석구석에 숨어있어 일명 ‘밤리단길’ 또는 ‘보넷길’로도 불린다. 누리길 완주를 목표로 나선 길이라면, 밤리단길의 매력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유의하자. 자리를 잡고 앉아버리고 싶은 가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경의로까지 기다란 띠처럼 이어진 밤가시공원 놀이터에선 아이들이 뛰놀고, 어르신들은 벤치에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공원 숲 산수유, 꽃사과, 산딸나무, 감나무에선 가을 열매들이 예쁜 빛깔로 익어간다.   

예쁜 카페와 맛집들이 들어선 밤리단길 골목.
예쁜 카페와 맛집들이 들어선 밤리단길 골목.

철길과 찻길 사이 풍성한 숲그늘 

풍산역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이제부터 경의로 녹지길을 따라 탄현 큰마을까지 약 4㎞의 직선거리를 걷게 된다. 초반에는 철길을 오른쪽에 두고 걷고, 후반에는 건너편으로 넘어가 철길을 왼쪽에 두고 걸어야 한다. 철길을 넘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산역사를 이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산지하차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고양누리길 홈페이지 지도에는 일산지하차도로 코스를 안내하고 있지만, 현재는 옛 일산역전시관에서 시작되는 일산기찻길공원이 잘 정비됐기 때문에 기자는 일산역에서 기찻길을 건너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나무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운 경의선 녹지공원.
나무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운 경의선 녹지공원.

철길과 찻길 사이에 조성된 경의로 녹지는 50m가량의 넉넉한 폭을 차지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운동과 산책을 즐긴다. 녹지에는 자전거길과 함께 보행자길이 조성돼 있지만, 정작 걷는 이들에게는 사람들의 발길에 패여 만들어진 나무 아래 흙길이 더 인기가 많다. 공원에는 양버즘나무와 스트로브잣나무, 단풍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중간중간 나타나는 예쁜 조형물은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에게 포토존을 제공한다. 또한 일산교 다리 밑에는 운동시설과 화장실이 마련돼 있어 경의로누리길을 걷는 이들에게 쉼터가 되어준다.   

연인들에게 인기 높은 포토존.
연인들에게 인기 높은 포토존.

옛이야기 들려주는 일산역전시관

경의중앙선 일산역사를 통과해 철길 안쪽 일산 구도심으로 들어선다. 역전에는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인 오래된 골목들과 초고층 주상복합빌딩 공사현장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보전과 변화의 줄다리기가 펼쳐지는 일산 구도심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일산역 바로 옆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일산역사 건물을 활용한 ‘고양 일산역 전시관’이 나타난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경의선 개통과 함께 교통과 상업의 요지가 된 일산읍의 역사, 그리고 일산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3·1만세운동과 항일투쟁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고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일산시장을 한번 둘러봐도 좋겠다.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전하는 일산역전시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전하는 일산역전시관. 

기와 굽던 와야촌, 독 만들던 독점말

일산역 전시관에서 철길을 따라 이어진 일산기찻길공원은 앞서 걸었던 경의선 녹지공원에 비해 좀 더 아기자기한 공원길이다. 바로 옆 아파트단지와 가깝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핑크뮬리와 같은 새로운 조경식물들이 다양하게 식재됐고 연못, 넝쿨식물터널, 그네의자, 벽화 등이 곳곳에 꾸며져 있다. 덕분에 휴식과 놀이를 즐기는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지난해 12월에는 기찻길공원 바로 옆에 일산도서관이 문을 열어 인근 주민들의 문화 사랑방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파트단지 정원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일산기찻길공원.
아파트단지 정원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일산기찻길공원.

여기서 잠깐, 일산과 탄현의 옛 마을이름들을 짚어보자. 일산시장 부근의 일산2동은 기와를 굽는 마을이라는 뜻의 ‘와야촌’이라 불렸고, 기찻길공원 부근의 일산1동은 항아리를 만들던 마을이라 ‘독점말’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탄현(炭峴)은 숯을 굽는 마을인 ‘숯고개’다. 기와와 항아리, 숯의 공통점은 뭘까. 두말할 것도 없이 장작 땔감이다. 다시 말해 한강 하구의 너른 벌판에서 그나마 나무를 구할 수 있었던 고봉산과 황룡산 아랫자락에 와야촌과 독점말, 숯고개가 줄줄이 자리하게 된 것이다. 자연의 조건에 순응해 마을을 만들고 노동을 했던 옛사람들의 삶이 마음속에 그려진다. 와야촌과 독점말, 숯고개마을을 연결하는 풍성한 스토리 콘텐츠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독점말을 상징하는 장독대. 
독점말을 상징하는 장독대. 

숯고개 조형물이 반기는 탄현근린공원

공원길은 탄현지하차도와 탄현역을 지나 SBS탄현제작센터 담장으로 이어진다. 탄현신도시 조성구간의 경계에 해당하는 이 지점에서 뜬금없이 시골분위기의 텃밭이 나타나는데, 김장철을 기다리며 몸집을 불리는 배추와 무, 무성하게 뻗은 고구마줄기와 넓은 토란잎이 나들이꾼의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벚나무 그늘이 이어진 오르막 산책로를 조금 걸어가면 일현로가 나타나고, 여기서 우회전을 해 길건너 은행나무가 도열한 탄현 큰마을 담장을 바라보며 황룡산을 향해 걷는다. 

탄현근린공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숯 모양의 조형물.
탄현근린공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숯 모양의 조형물.

큰마을을 지나 일산동고 담장을 따라 탄현근린공원에 도착하면 고양누리길 8코스 경의로누리길의 종착점이다. 평탄하고 재미난 길을 걸었기 때문인지 두 다리에 기운이 남아돈다. 탄현근린공원 중앙에는 마을을 상징하는 커다란 숯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고, 아이놀숲과 모래마당, 피크닉테이블이 마련돼 있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배드민턴장 뒤편을 장식하고 있는 황화코스모스 꽃밭이 석양빛을 받아 노랗다 못해 붉게 타오른다. 체육시설과 휴게시설, 놀이체험시설이 골고루 배치된 탄현근린공원을 천천히 구경하며 일정을 마무리한다. 황룡산과 고봉산이 기다리는 다음번 나들이길이 기다려진다. 

석양빛에 물든 황화코스모스.
석양빛에 물든 황화코스모스.

❚경의로누리길 걷기 정보 
- 코스 길이 : 7.25㎞
- 소요 시간 : 1시간 50분~2시간 10분 
- 출발점 : 정발산역
- 도착점 : 탄현근린공원 
- 경관·휴식 포인트 : 정발산 평심루, 밤리단길 골목, 일산역전시관, 일산기찻길공원 포토존, 탄현근린공원 
- 화장실 : 6곳(정발산공원, 밤가시공원, 일산교 하단, 일산역, 탄현역, 탄현근린공원) 
- 뒤풀이 맛집 : 탄현 먹자골목, 일산시장   

[이미지=고양누리길 홈페이지]
[이미지=고양누리길 홈페이지]
일산기찻길공원의 벽화.
일산기찻길공원의 벽화.
은행나무가 도열한 탄현큰마을 담장길.
은행나무가 도열한 탄현큰마을 담장길.
밤가시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밤가시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탄현근린공원.
경의로누리길의 종착점인 탄현근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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