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⑨ 고봉누리길(상)

산길·마을길 이어지는 4.2㎞ 황룡산 순환코스
가을빛 완연한 숲속엔 밤과 도토리 지천 
펜스와 참호… 군사시설과 공존하는 산책로

곳곳에서 실감하는 탄현마을 주민들의 숲사랑 
유서 깊은 용강서원, 가슴 아픈 역사 금정굴 
이웃들과 일상 함께하는, 가까이 있어 좋은 숲

황룡산은 인근 탄현동 주민들의 친근한 녹색 쉼터다. 
황룡산은 인근 탄현동 주민들의 친근한 녹색 쉼터다. 

[고양신문] 고양누리길 9코스 고봉누리길은 일산동·서구의 뒷동산인 고봉산~황룡산을 연결하는 코스다. 고봉누리길 지도를 보면 마치 안경 모양이 연상된다. 이웃하고 있는 고봉산 순환로와 황룡산 순환로가 두 개의 안경알이고, 둘을 이어주는 코걸이 부분이 고봉삼거리를 지나는 연결로, 두 개의 안경 다리는 각각 안곡습지공원과 탄현근린공원에서 출발하는 진입로다. 

원칙대로라면 안경 모양을 따라 9코스 전체를 돌아야 하지만 아쉽게도 취재 일정에 차질이 생겨 우선 황룡산만 먼저 돌아보았고, 기사 역시 부득이하게 상·하로 나눠 싣게 됐다. 독자님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오늘의 여정은 ▶탄현근린공원 ▶능선길 ▶정상 부근 쉼터 ▶용강서원 ▶상감천마을 ▶권필 묘 ▶금정굴을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 약 4.2㎞ 거리의 황룡산 순환코스다.

반가운 탄현 생태숲 복원사업

황룡산 순환로의 진입로는 여러 곳이 있지만, 경의로누리길을 마무리한 일산동고 뒤편 탄현근린공원을 출발점으로 잡는 게 좋다. 주차장이 잘 마련돼 있고, 공원과 어린이놀이터, 생태숲 복원구간 등 여유로운 쉼터가 탐방객을 맞아주기 때문이다. 

탄현근린공원 바로 위 황룡산 아랫자락은 불법경작 농경지가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었는데, 지난해 탄현 생태숲 복원사업이 진행돼 아기자기한 생태공원으로 정비됐다. 아직은 나무들이 덜 자라 풍경이 성기지만, 산책로, 쉼터 정자, 곤충호텔, 생태연못 등이 구석구석 배치돼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생태숲 복원 공원의 작은 연못을 구경하는 가족들. 
생태숲 복원 공원의 작은 연못을 구경하는 가족들. 

가을 열매는 다람쥐들에게…

나무들은 가을빛이 완연하다. 공원에서 가장 흔히 마주치는 느티나무 단풍은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고 다채롭다. 자세히 살펴보면 노란색, 붉은색, 연두색, 황토색, 갈색 등 대여섯 개의 색깔이 한 나무에서 연출되기 때문에 보면 볼수록 신비롭다. 황룡산 숲속의 참나무 형제들과 밤나무들은 올해도 도토리와 밤송이를 가득 떨궜다. 밤과 도토리는 다람쥐들 몫이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지만,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채취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 다람쥐들은 올해도 숲을 텃밭인양 누빈다.

본격적으로 나무그늘 사이로 오르막길을 오른다. 황룡산 경사면의 수종은 참나무류가 대세다. 그래서 아랫마을에서 질 좋은 참숯을 구울 수 있었나보다. 여섯 종(갈참, 굴참, 졸참, 신갈, 떡갈, 상수리)이나 된다는 참나무를 정확히 구분해내기는 어렵지만, 잎과 도토리의 모양을 보며 대강 짐작을 해보는 재미가 있다. 

색색의 단풍이 물드는 가을 느티나무.
색색의 단풍이 물드는 가을 느티나무.

턱밑까지 올라온 주거지 개발

능선길로 올라서면 길게 이어진 철망펜스가 나타난다. 황룡산 동쪽 사면을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나무 그늘이 드리운 능선 산책로는 철망펜스를 따라 한동안 이어지다가 서쪽 사면 탄현묘지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난다. 곳곳에 엄폐된 군부대 참호와 진지 등은 접경지역과 멀지 않은 고양시 대부분의 야산들에서 비슷하게 발견되는 풍경들이다. 

황룡산 정상에 다다를 무렵, 서북쪽 파주 운정신도시 방향으로 잠시 시야가 트인다. 내려다보니 어느새 황룡산 기슭 턱밑까지 빌라와 전원주택이 밀고 올라왔다. 불과 몇 년 사이 파주쪽 황룡산 풍경이 확 달라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러다간 정말 박완서 소설가의 표현처럼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묻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파주 운정 방면의 황룡산 중턱까지 주택들이 밀고 올라왔다. 
파주 운정 방면의 황룡산 중턱까지 주택들이 밀고 올라왔다. 

두꺼비와 싸운 황룡의 전설 

황룡산 누리길을 걷다 보면 탄현동 주민들이 이 숲길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작은 곤충과 새들을 소중히 여기자는 안내판, 산책로가 아닌 길로 다니면 숲이 훼손된다는 권고, 반려견을 동반한 이들을 위한 배변봉투함 등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탄현마을과 황룡산의 역사와 유래를 적은 설명문을 읽어보면, 산과 한몸이 되어 살았던 옛사람들의 삶이 마음속에 그려진다.

탄현동 이웃들이 황룡산을 이처럼 애정하는 이유가 황룡산이 다른 산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늘 편안한 모습으로 가까이에 있어 주기 때문이리라. 황룡산주민자치위원회가 내건 ‘푸른 숲 황룡산, 우리 마을의 자랑’이라는 자부심 가득한 슬로건은 마을 뒷산이 선물해주는 가치를 부족함 없이 증명해준다.  

황룡산 곳곳에서는 탄현동주민자치위원회가 설치한 다양한 안내문을 만날 수 있다.
황룡산 곳곳에서는 탄현동주민자치위원회가 설치한 다양한 안내문을 만날 수 있다.

아쉽게도 높이 134.5m의 황룡산 정상은 특별한 전망이 없다. 실질적 정상 부분을 군사시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산책을 나선 주민들이 삼삼오오 숨을 고르고 일어서는 쉼터와 운동시설이 놓여있을 뿐이다. 정상 부근에 설치된 황룡산 설명문에는 인근 성석동 두테비마을의 두꺼비와 황룡산의 황룡이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호랑이도 아니고 겨우 두꺼비랑 싸웠다니, 황룡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군부대 철망펜스를 따라 이어진 능선길. 
군부대 철망펜스를 따라 이어진 능선길. 

충신과 문장가 기리는 서원·묘소

감내마을을 향해 내려가는 하산길은 인적이 뚝 끊긴다. 한가한 산길을 홀로 걷다 보니 나뭇가지에 걸린 고양누리길 리본이 비로소 반갑게 눈에 들어온다. 작은 개울을 건너고, 비포장 임도를 지나 마을로 내려오면 밤송이가 뒹구는 오솔길을 가로질러 허공에 놓여있는 가늘고 긴 시멘트 다리가 나타난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시멘트다리가 아니라 농업용수를 나르는 농수로다. 감내마을 일대의 농경지를 적셔준 고마운 물길 풍경이다.  

감내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만나는 농수로. 
감내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만나는 농수로. 

상감천(上甘川)과 하감천(下甘川)으로 나뉘는 감내마을은 물맛이 달아 붙여진 이름이다. 상감천마을에는 용강서원(龍江書院)이 자리하고 있는데, 고려말과 조선 초·중기의 충신인 박서와 박순, 조상경을 제향하는 유서 깊은 서원이다. 현재의 건물은 1970년대에 중건됐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서원 주변으로 빌라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서 이전의 한가롭던 정취가 그립기도 하다. 서원 바로 앞에는 용강서원의 역사를 지키고 있는 음성박씨 충민공파 회관이 ‘슈가파머스’라는 농부카페 간판을 건 채 자리하고 있다.

코스는 고봉로 찻길과 나란히 뻗은 마을길을 따라 이어진다. 왼쪽으로는 창고와 공장이, 오른쪽으로는 개울 건너 황금빛으로 물든 논이 펼쳐지고, 군부대가 자리한 황룡산 기슭에 조선 중기에 필명을 떨쳤던 석주 권필(石洲 權韠)의 묘가 있다. 

권필은 뛰어난 문장력을 지녔지만, 어긋난 사회상을 풍자하는 시를 지어 권력의 눈 밖에 나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의 일대기를 갈무리한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고 한다. 

상감천마을에 자리한 용강서원. 
상감천마을에 자리한 용강서원. 

기억해야 할 안타까운 희생

길은 승마장과 대형 식당을 지나 고봉산삼거리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초입에는 한국전쟁이 남긴 비극적 역사의 현장인 금정굴이 나타난다. 남과 북이 고양지역을 뺏고 빼앗겼던 상황에서 200여 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통제되지 못한 국가권력에 의해 안타깝게 희생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의 시신은 일제에 의해 금 채굴 광산으로 개발됐다가 폐광된 구덩이에 한꺼번에 매장됐다가 1990년대 중반이 돼서야 유해 발굴이 이뤄졌다.

유족들과 지역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금정굴의 억울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사업은 여전히 지역사회의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현장을 덮고 있는 천막에 그려진 희생자들의 빛바랜 사진 앞에서 잠시 숙연한 묵념을 올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름한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금정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장승들.
아픈 역사를 간직한 금정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장승들.

가족들의 행복한 가을 저녁 

발걸음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탄현근린공원으로 향한다. 올라갈 때는 생태숲복원구간을 지났으니, 내려올 때는 아이놀숲 공원을 둘러본다. 쾌적한 피크닉테이블과 모험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선 가족들의 행복한 저녁시간이 펼쳐진다. 

나무로 만든 놀이터에서 엄마 아빠의 응원을 받는 꼬마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씩씩한 모험가가 된다. 탄현마을 이웃들의 뜨거운 사랑과 응원을 한몸에 받는 황룡산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명산임에 틀림없다.  

❚고봉누리길(상) 황룡산 걷기 정보

코스길이 : 4.2km
소요시간 : 2시간~2시간 30분
출발 및 도착점 : 탄현근린공원
경관 포인트 : 탄현생태숲, 황룡산 능선길, 용강서원, 금정굴 평화공원 
화장실 : 3곳 (탄현근린공원, 황룡산 쉼터, 고봉산삼거리 주유소)
뒤풀이 맛집 : 고봉로 주변 식당

용강서원 바로 앞 '슈가파머스' 카페. 
용강서원 바로 앞 '슈가파머스' 카페. 
황금빛으로 물든 고봉로 주변의 농경지.
황금빛으로 물든 고봉로 주변의 농경지.
금정굴 현장의 임시 건물. 
금정굴 현장의 임시 건물. 
탄현근린공원 모험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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