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14) 바람누리길

한강에서 창릉천 따라 북한산까지 15.5km 
고양의 자연마을 옛 이름 딴 19개 지천들
반가운 겨울철새들, 걱정스런 가시박 피해

도래울~삼송~지축으로 이어지는 아파트 숲 
천변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과 수변공원
누리길 나들이 출발점 북한산 입구로 회귀  

창릉천 하구 둔치 풍경. 
창릉천 하구 둔치 풍경. 

[고양신문] 어느덧 고양누리길 코스를 차례로 둘러보는 연재의 마지막 시간, 여름에 출발한 걸음이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 다다랐다. 마지막 14코스 바람누리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창릉천과 나란히 걷는 물길이자, 고양의 상징 경관을 이어주는 바람길이기도 하다. 길의 첫머리 북한산 숲에서는 시원한 산바람이, 길의 종착점인 덕양산 기슭 한강에서는 상쾌한 강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창릉천을 타고 흐르는 산바람 강바람이 고양시라는 커다란 콘크리트숲에 자연의 숨결을 터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람누리길’이라는 이름 속에 담겼다. 아울러 고양신문이 2007년부터 매년 개최해온 ‘고양바람누리길걷기축제’에서 길의 이름이 비롯됐다는 점도 살짝 밝혀둔다. 길이는 14개 코스 중 가장 긴 15.5km나 되지만, 둔치길을 따라가는 평탄한 길이기 때문에 시간만 넉넉히 잡고 출발하면 가뿐하게 완주할 수 있다.   

창릉천은 서오릉 창릉(昌陵, 조선 8대 예종의 능)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일반적으로 바람누리길은 물줄기를 따라 북한산 입구에서 출발해 창릉천 하구 고양행주수위관측소를 종점으로 삼지만, 이번 기사에서는 첫 연재를 시작한 북한산으로 회귀한다는 의미에서 거꾸로 창릉천을 거슬러 오르기로 한다. 

평소 같으면 걷는 내내 수시로 북한산이 조망됐겠지만, 아쉽게도 시야가 답답하다. 일기예보에서는 미세먼지가 심하니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지만, 그렇다고 다른 날을 잡을 수도 없는 형편이라 걷기를 시작한다. KF94 마스크의 성능을 믿어보는 수밖에. 

차례로 이어지는 여섯 개의 구간

오늘 걷게 될 코스를 임의로 6개 구간으로 나눠 미리 일별해보자. ▲1구간은 덕양산 기슭에서 출발해 강고산 마을을 지나 강매석교까지이고 ▲2구간은 봉대산 기슭에서 자전거도로를 따라 화도교와 화전교를 차례로 지난다. 

이어 ▲3구간 원흥지구 도래울마을을 통과하고 ▲4구간에서 삼송교에서부터 덕수교까지, 삼송지구 수변공원을 만난다. ▲5구간은 통일로부터 택지개발이 진행중인 지축지구를 거치고 ▲은평뉴타운과 입곡삼거리를 지나 북한산성 입구까지가 마지막 6구간이다. 

창릉천을 걷는 또 하나의 재미는 무려 19개나 되는 지천들이 창릉천과 합류하는 모습들을 차례로 만난다는 점이다. 창릉천 지천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고양 땅 옛 자연마을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특히 중고개천, 샛말천, 솔개천, 가시골천, 응달천 등 예쁜 순우리말 이름들이 유독 많아 더욱 정감이 간다.  

2019년 '고양의 생태하천' 연재기사를 쓸 때 작성해둔 창릉천 물길 지도.
2019년 '고양의 생태하천' 연재기사를 쓸 때 작성해둔 창릉천 물길 지도.

나무마다 다 다른 단풍 시기 

창릉천 하구에는 경기도와 고양시가 함께 조성한 ‘창릉천 푸른숲길’이 자유로 하단에서 강매석교까지 이어진다. 예전에는 둑방길 차도 옆 협소한 길을 따라 목향 식당과 뚝방슈퍼를 지났는데, 이제는 천변 둔치를 따라 걷는다. 두달 전 행주누리길을 걸으며 통과했을때와 비교하면 강변 풍경이 확 달라졌다. 물가의 갈대들이 부수수한 쑥대머리를 흔들고 있고, 푸르른 가지를 늘어뜨렸던 버드나무에도 누릇누릇한 단풍이 들었다. 일주일 단위로 누리길을 걷다 보니 나무마다 단풍이 물드는 시기도, 색깔도, 낙엽을 떨구는 속도도 다 다르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가을에 코스모스가 가득했던 창릉천 하구 꽃밭에선 트랙터 한 대가 부지런히 땅을 갈고 있다. 차릉천 둔치 꽃밭은 강고산마을 주민들이 정성으로 가꾸고 있는데, 겨울 지나 봄맞이를 할 때 유채꽃씨를 뿌릴 예정이란다.

내년 봄 유채꽃씨 파종을 위해 창릉천 둔치 꽃밭을 트랙터로 갈고 있는 강고산마을 주민들. 
내년 봄 유채꽃씨 파종을 위해 창릉천 둔치 꽃밭을 트랙터로 갈고 있는 강고산마을 주민들. 

데크다리에서 만난 꼬마 산책자 

강매배수펌프장 수문 돌다리를 지나 아치모양의 데크다리를 건너는데 작은 꼬마가 어린 강아지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달려온다. 꼬마와 강아지의 신나는 산책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아빠는 멀찍이서 따라오고 있다. 고양누리길 나들이에서 만난 가장 귀여운 산책자들이다.  

창릉천 푸른숲길에서 만난 꼬마와 강아지. 
창릉천 푸른숲길에서 만난 꼬마와 강아지. 

주변의 풀들이 사그라드니 강매석교의 견고하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이 더욱 도드라진다. 하천에는 먼 길을 날아온 겨울철새 무리가 먹이를 찾으며 쉬고 있다. 

고양누리길은 강고산 입구에서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 산길로 올라가면 행주누리길이고, 바람누리길을 걸으려면 오른쪽 다리를 건너 둔치길을 걸으면 된다. 머리 위로 봉대산 터널을 빠져나온 서울문산고속도로 교각이 기운차게 뻗어 있다. 바람누리길의 많은 구간은 창릉천 자전거길과 겹쳐지기 때문에 보행자 스스로 주의를 해야 한다. 가끔씩은 열댓명 정도가 줄지어 단체 레이싱을 펼치기도 한다.

창릉천 자전거길을 따라 이어진 고양누리길.
창릉천 자전거길을 따라 이어진 고양누리길.

가시박을 뒤집어쓴 버드나무들 

둔치에는 갈대와 물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솜털의 모양과 질감이 제각각이다. 어떤 녀석은 곱슬곱슬, 어떤 녀석은 부슬부슬, 어떤 녀석은 매끈매끈하다. 이름을 안다면 하나하나 불러주고 싶다만, 생태지식이 짧으니 눈인사로만 대신한다.

하천의 오른쪽 둔치를 따라 이어지던 길은 경의중앙선 철교 앞에서 왼편 둔치로 넘어가 행신동과 화전동을 잇는 화도교까지 이어진다. 화도교 아래에선 커다란 물탱크를 짊어진 물차들이 코끼리 코처럼 호스를 하천에 담그고 물을 채우는 모습을 늘 볼 수 있다.  

창릉 3기신도시가 들어서면 건너편 풍경이 어떻게 달라질까.
창릉 3기신도시가 들어서면 건너편 풍경이 어떻게 달라질까.

안타깝게도 이즈음 창릉천 둔치를 걷다 보면 나무들이 죄다 누더기같은 덩굴을 뒤집어쓰고 있는 흉물스러운 모습을 목도해야 한다. 우리나라 수변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가시박이다. 덩굴잎이 초록색을 띠는 동안에는 눈에 잘 안 띄다가, 잎이 누렇게 말라버리면 기괴한 풍경이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키가 큰 나무들을 덮은 가시박 덩굴들은 열대 원시림의 캐노피 같기도 하고, 둥그스름한 봉분이 이어진 고분군(古墳群)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무덤이 맞다. 덩굴 밑에서 나무들이 말라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건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들이다. 멋진 수형을 자랑하는 버드나무들이 가시박에게 먹혀버리는 모습은 창릉천 전 구간에 걸쳐 나타난다. 

버드나무는 우리나라의 수변 생태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다. 새로운 나무를 많이 심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존의 생태계에서 뿌리를 내린 나무들을 가시박의 습격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더 급선무가 아닐까.

다리 하단의 빈티지한 휴식공간  

화도교와 도래울교 사이는 창릉신도시와 직접 닿는 구간이다. 자연녹지를 최대한 끌어안겠다는 콘셉트를 밝힌 창릉신도시 공사가 시작되면 창릉천 풍경이 또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진다.   

자전거길을 따라 바람개비가 늘어선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작은 쉼터가 나타난다. 강바람이 시원한 이곳은 자전거를 타는 이들에게는 요긴한 휴게소다. 강 건너로 야트막하고 둥그스름한 망월산의 모습이 보인다. 

도래울교 하단에선 흥미로운 광경이 목격된다. 상판과 둑방길 사이의 야트막하고 넓은 틈새에 여러 세트의 탁자와 의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쪽에는 수납장도 놓여있고, 탁자 아래에는 바둑판과 장기세트도 정리돼 있다. 누군가가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나름 빈티지한 휴식공간으로 꾸며놓은 것이다.

바람개비쉼터로 올라가는 창릉천 자전거길.
바람개비쉼터로 올라가는 창릉천 자전거길.

여백 없이 이어진 도래울~삼송마을

도래울마을 구간으로 접어드니, 잘 정비된 도심공원 분위기가 완연하다. 흔들의자 그네에 앉은 중년들이 한가로운 오후시간을 보내고 있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견주들은 목줄을 조심스럽게 잡고 종종걸음을 재촉한다. 

도래울 구간 산책자들은 선택지가 다양하다. 천변 둑방에는 자전거길과 도보길이 조성됐고, 공원에도 별도의 산책로가 정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초록의 잔디밭 한가운데에 발자국이 만든 흙길이 선명하다. 초록색 땅을 밟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인가보다.

수년전만 해도 도래울마을과 삼송신도시 사이에 여백의 공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건물들이 속속 채워지며 시가지가 하나로 연결됐다. 

도래울마을 녹지공원의 발자국길 흔적.
도래울마을 녹지공원의 발자국길 흔적.

아름다운 생태 쉼터 덕수생태공원 

삼송신도시 초입에서 만나는 덕수생태공원은 바람누리길에서 가장 쾌적한 쉼터다. 사실 이곳은 비가 많이 왔을 때 삼송지구 일대의 빗물을 가두었다가 배출하는 저류지 기능으로 만들어졌지만, 수변식물들이 식재되고 아름다운 산책로와 관찰데크가 만들어져 인근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됐다. 덕수생태공원과 이어진 산책로마다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이 섞인 벚나무 단풍이 마지막 가을 잔치를 펼치고 있다.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인 삼송지구 창릉천 공원은 고양시 전체에서도 이용자가 가장 많은 수변공원이다. 이쯤에서 북한산의 멋진 모습이 조망돼야 하는데, 미세먼지 탓에 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높은 건물들의 실루엣만 어렴풋하다.  

가을 정취 가득한 덕수생태공원.  
가을 정취 가득한 덕수생태공원.  

둑방 위를 따라가다보니 ‘창릉천 이야기’를 적어놓은 내 천(川)자 모양으로 만든 안내판이 눈에 띈다. 지금까지 본 수변공원 안내간판 중 가장 인상적인 디자인이다. 그런데 창릉천이 아닌 공릉천 풍경이 버젓이 안내판에 들어있는 게 아닌가. 디테일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좋았겠다. 

삼송동 주택단지 옆 둑방 풍경도 변하고 있다. 삼각지붕 다락방이 있는 80년대 스타일 단독주택들이 어느새 대부분 다가구주택으로 재건축됐고, 벚나무 둑방길을 따라 분위기 있는 카페들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삼송마을 둑방길에서 만난 창릉천 안내간판. 디자인이 멋져서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뜬금없이 공릉천 사진이 올라가 있다.
삼송마을 둑방길에서 만난 창릉천 안내간판. 디자인이 멋져서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뜬금없이 공릉천 사진이 올라가 있다.

 

삼송 구도심마을 벚나무 둑방길. 
삼송 구도심마을 벚나무 둑방길. 

택지개발 마무리 접어든 지축지구 

창릉천과 통일로가 교차하는 덕수교 하단을 통과해 새로 만들어진 둔치 자전거길을 따라 지축지구로 향한다. 아직 종착점까지 한참 남았는데, 너무 여유를 부리며 걸은 탓인지 벌써 사방이 어둑어둑해졌다. 

지축교부터는 서울 은평뉴타운 쪽 둑방길을 따라 걷는다. 지축지구 싸릿말 구간 택지개발이  마무리되면 조만간 건너편 산책로를 따라 새로운 풍경을 감상하며 걷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입곡삼거리부터 북한산성 버스정류장까지, 찻길 옆 보도를 터벅터벅 걸어 고양누리길 14코스 나들이를 마무리한다.   

신축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는 지축지구. 
신축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는 지축지구. 

“동행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석 달 동안 매주 한 차례, 고양 땅 구석구석의 산길과 물길을 차례로 지났다. 사람 사는 마을들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보았고, 나들이의 쾌감을 더해주는 멋진 풍경들을 곳곳에서 만났다. 기회가 된다면, 고양누리길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고양시 구석구석 우리동네 누리길들도 하나씩 걸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동안 지면과 온라인으로 고양누리길 연재기사를 읽으며 나들이에 동행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일상 속에서 걷기와 함께 하며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람누리길의 종착점인 북한산성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고양누리길 종합안내판. 
바람누리길의 종착점인 북한산성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고양누리길 종합안내판. 

❚바람누리길 걷기 정보 
- 코스 길이 : 15.5㎞
- 소요 시간 : 3시간 50분~4시간 30분 
- 출발점 : 창릉천 하구 행주수위관측소
- 도착점 : 북한산성 버스정류장 
- 경관·휴식 포인트 : 창릉천 푸른숲길, 강매석교, 도래울 바람물공원, 덕수생태공원, 세솔다리 북한산 경관 
- 화장실 : 4곳(바람물공원, 달걀부리공원, 덕수생태공원, 은평뉴타운 창릉천산책로) 
- 뒤풀이 맛집 : 북한산 입구 식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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