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세무사의 세무칼럼
[고양신문] 제조업을 운영하는 김 사장은 최근 회사를 모두 정리해서 가족과 함께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로 이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면 증여세나 상속세가 무려 재산 가액의 최대 50%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세계적으로 높기로 유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50%다. 최대주주 할증 과세 20%를 합산할 땐 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소기업 가업 승계 시 고액 상속세로 고통
징벌적 과세수준인 상속세로 인해 기업 자체가 부실해진 사례는 우리 주변에 부지기수로 많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생산업체였던 쓰리세븐은 지난 2008년 상속세로 인해 지분을 전량 매각한 후 적자기업으로 전락한 바 있다. 세계적 초일류기업인 삼성그룹도 이건희 회장 사망 후 상속인들이 12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상속세 납부 재원마련을 위해 금융기관에서 신용대출을 받았을 정도니 일반 중소기업들이 상속세로 인해 겪는 고통에 대해 달리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나 싶다.
징벌적 과세수준인 현행 상속세 체계로 인해 경영계는 ‘가업을 물려주려다 보니 내야 하는 세금부담이 너무 커서 상속세를 내고 나면 회사가 과연 온전할까’라는 걱정을 많이 한다.
유명무실한 가업상속공제 현실화 필요
우리나라 현행세법상 징벌적 수준인 상속세를 피해갈 방법이 있기는 하다. 바로 ‘가업상속공제’다. ‘가업상속공제’ 제도란 사주의 자녀에 대해 상속세를 줄여주는 제도를 말한다.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해서 경영한 중소기업 등을 상속인 1인이 승계하면 가업 상속재산액수의 100%(최대 500억 원)를 상속공제 함으로써 중소기업 등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지원하는 제도다.
이렇게 상속세를 피해갈 방법이 세법에 마련되어 있음에도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그동안 깐깐한 사후관리규정 때문에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 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6~2020년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려는 건수는 연평균 92.8건 총공제금액은 2866억 원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경영계의 고충을 고려해 정부는 ‘2023년 적용 세법개정안’에 가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이언트 스텝 금리 인상 뉴스에 버금가는 획기적 가업상속공제 개편내용을 발표했다.
시선 쏠리는 ‘2023년 적용 세법개정안’
그동안 중소기업, 중견기업 사주들이 가업 승계상속을 할지 일반상속을 할지를 고민했다면 7월 2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적용 세법개정안’을 반드시 숙지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주들이 가업 승계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적용 세법개정안’에 따라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확대, 공제 한도확대, 사후관리완화 등 내년부터 크게 달라질 가업상속공제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적용대상 기업이 대폭 확대된다. 현행세법상 가업상속공제 적용대상 기업은 중소기업 및 매출액 4000억 원 미만 중견기업이었으나 개정안은 매출액 1조 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상향돼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견기업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게 된다.
가업상속공제 한도 최대 1000억 원으로 확대
둘째, 가업상속공제 공제 한도가 두 배로 인상된다. 가업 영위 기간 10년 단위로 최대 500억 원까지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었으나 최대 1000억 원까지 가업상속공제 한도가 확대된다.
셋째, 피상속인 지분요건이 완화된다. 피상속인이 가업 상속 대상기업의 최대주주이거나 지분 50% 이상(상장법인 30%)을 10년 이상 계속 보유하고 있어야 했지만, 지분 40% 이상(상장법인 20%) 보유로 요건이 완화된다.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이 사업확장을 위해 외부투자를 받는 경우 지분율 50%(상장법인 30%)를 보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지분율 요건을 완화함으로써 더욱 많은 성장기업이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넷째, 사후관리 기간이 7년에서 5년으로 단축된다. 가업상속공제로 상속세를 감면받은 후에 사후관리요건을 위배하게 되면 감면받은 세금을 추징당하게 된다. 세금을 추징할 수 있는 과세관청의 사후관리 기간이 2년 전에 10년에서 7년으로 개정된 바 있는데, 2년 만에 또다시 7년을 5년으로 단축해 많은 기업이 사후관리 걱정 없이 가업 상속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다섯째, 업종 변경 범위가 확대된다. 가업 상속을 받은 업종을 중분류에서 대분류 내 변경이 가능하도록 변경했다. 기존 세법에 따르면 제조업을 하는 기업을 가업 상속받았을 때 도소매업으로 변경할 수 없었지만, 개편안에 따르면 대분류 내 변경이 가능하게 돼 보다 자유롭게 업종 변경을 할 수 있게 했다.
고용유지 사후관리요건은 대폭 완화
여섯째, 고용유지의무가 완화된다. 기존 세법에 의하면 가업 상속 후 매년 정규직 근로자 수를 80% 이상 또는 총급여액의 80% 이상을 유지하고 7년 통산 정규직 근로자 수는 100% 이상 또는 총급여액의 10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고용유지 사후관리요건을 준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므로 그동안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유명무실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개정세법안에 따르면 매년 정규직 근로자 수를 80% 이상 또는 총급여액의 80%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규정이 삭제됐고, 가업 승계 후 5년 통산 정규직 근로자 수 또는 총급여액의 90%만 유지하면 사후관리 요건이 충족된다. 기업이 재정악화로 근로자 수를 줄이거나 총급여지급액을 줄이는 경우 사후관리 요건위배로 감면받은 상속세금을 토해내야 하는 기존세법상 문제점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곱째, 자산유지의무가 완화된다. 가업 상속 후 가업용 자산의 20%(5년 내 10%) 이상 처분이 제한됐으나, 40% 이상 처분제한규정으로 개정된다. 예를 들어 수도권에서 제조업체인 A 기업이 공장을 500억 원에 매각하고 지방으로 이전한 경우 300억 원만 투자해 가업용 자산을 취득하면 된다. 개정세법안에 따르면 더욱 융통성 있게 가업용 자산을 처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7월 2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이 연말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세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던 기존세법상 문제점들이 대거 제거돼 내년부터는 가업상속공제제도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봉구 세무법인 석성 경기북부지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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